원현린 칼럼

이 또한 지나가리라

원기자 2012. 10. 2. 10:36

이 또한 지나가리라
2007년 03월 07일 (수)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왕이 세공장을 불러 놓고 자신을 기릴 수 있는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라고 지시하며 다음과 같은 주문을 했다.

“내가 전장에서 큰 승리를 거둬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환희에 들떠 있을 때 스스로 자제할 수 있고, 반대로 슬픔과 절망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 때 용기를 줄 수 있는 글귀를 한 문장으로 새겨 넣어라”는 것이었다.

세공장은 반지를 만들어 놓고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뜻을 동시에 담은 글귀가 떠오르지 않아 고심하다가 당시 지혜롭기로 소문난 솔로몬을 찾아갔다. 잠시 생각에 잠긴 솔로몬은 다음과 같은 문장을 써 주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글을 본 세공장은 무릎을 치며 기뻐했고 이 한 구절을 반지에 새겨 넣어 왕에게 바쳤다. 반지를 받아 본 왕은 흡족해하고 이후로는 기쁠 때나 힘든 일이 있으면 그 때마다 반지를 들여다보곤 했다.

어저께 한 고등학교 앞을 지나다가 내려졌어야 할 현수막이 여전히 내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A대학교 누구누구, B대, C대 아무개 등 몇 명. 세칭 국내 일류대학이라는 학교 순서대로 입학한 학생들의 이름과 함께 입학 생 숫자가 적힌 플랭카드였다.

지난달 졸업식에 이어 지난주 초중고교가 봄방학을 마치고 일제히 개학했다. 학교마다 정문에는 ‘입학을 축하합니다.’ 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그런데도 이 학교만은 유독 대학 합격자 이름이 적힌 현수막을 해가 바뀌고 새 학기가 시작됐는데도 여전히 내리지 않고 있었다. 전교 수험생 수로 본다면 불과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 숫자다.

학교에서는 학교의 명예를 빛낸 학생들이라며 마치 과거에 급제한 양 내세운 것이리라. 아마도 새로 고교에 입학한 신입생들에게 자극을 주기 위함일 게다.

학교 측이 학교의 명예라는 환상에 빠져있는 동안에 진학을 포기한 학생이라든가 소위 이름난 대학에 가지 못해 고개 숙인 다수학생들의 심중을 한번쯤 헤아려 보았어야했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들 다수를 아랑곳하지 않았다면 이 학교는 고작 일류대 몇 명만 위하여 그토록 오랜 시간을 밤에 불 밝히고 공부시켰다는 얘기다.

전국에는 4년제 대학에 전문대를 합하면 300여개가 넘는 대학이 있다. 어떻게 A, B, C 대 몇 개 대학만을 대학이라 하는가. 나머지 대학은 대학으로 인정조차 하지 않는 다는 얘기가 된다.

학교당 기껏해야 한자리 수 내지는 10여명의 이름이 나붙는다. 가령 600명이 졸업한 학교의 경우 10명의 진학자 이름을 내건 학교가 있다고 치자. 이런 학교는 스스로 농사를 망쳤다는 얘기 밖에 안 된다.

나머지 다수는 다 어디로 보냈는가.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이 몇 명이나 되는가. 고3교실에서 교사들은 대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등 갖가지 위로의 말로 성적이 좋지 않거나 진학을 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나름대로 위로하기도 했을 것이다.

농부가 농사를 잘 지어야 하듯 학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학교는 농사를 잘못지은 것이다. 말로만 전인교육을 강조한 셈이다.

역사를 통해보면 나라가 망하는 원인은 힘이 없어서라기보다 분열이었다. 분열이 우려된다. 조용한 날이 없다. 대통령 자리를 놓고 다투는 모습이야말로 더욱 나라의 앞날을 걱정스럽게 하고 있다. 이것도 또한 지나가버리겠지만.

지구상에는 인류 역사상 수많은 민족이 흥하고 멸하고를 반복해왔다. 그 속에서도 힘이 없는 민족은 가차 없이 사라져갔다. 영원한 민족국가는 없었다. 살아남아 부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힘을 길러야한다.

“이미 지나간 것은 탓해야 소용이 없음을 깨달았고, 앞으로 올바른 일을 쫓음을 알았도다.”-오이왕지불간(悟已往之不諫), 지래자지가추(知來者之可追)- 라는 도연명의 시구도 있다. 대학 진학의 기쁨도 낙방의 슬픔도 일순간이다.

대학 진학생들, 재수생들, 진학을 포기한 졸업생 모두에 있어 고교생활은 지나가 버렸다. 무엇을 이루었다고 만족해하거나 실패했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사회는 입학생과 낙방생을 가리지 않는다. 모두의 새로운 도전을 기다리고 있다. 현수막에 자신의 이름이 내걸리지 않았던 청소년들에게 고한다. 결코 실망하거나 낙담하지 말라고.

아울러 이름이 나붙어 학교의 명예를 빛냈던 학생들에게 충고한다. 결코 자만하거나 교만에 빠지지 말라고. 양측 모두에게 권한다. 가끔은 왕의 반지에 새겨진 문구를 떠올려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