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현린 칼럼

서까래와 대들보

원기자 2012. 10. 5. 16:07

서까래와 대들보
2012년 07월 26일 (목)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이처럼 만물은 일정한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인간도 스스로 만든 준칙에 따라 행동한다.


법은 정의(正義)를 구현하는 수단이다. 우리 사회에 초법적인 부류들이 있다. 자칭 신분을 격상 시킨 인사들이 많다.


법치주의 하에서는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계급이 주어진다고 한다.


최근 ‘만사형통(萬事兄通)’이라는 신조어의 주인공이 한 말 한마디가 우리를 허탈하게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의원이 영장 실질 심사를 받기위해 법원에 출두하는 길에 멱살을 잡히고 계란 세례를 받자 “어떻게 저런 사람들을 통제하지 못했나…”라며 불만을 토로했다한다.


청와대 일부 비서관들도 권력형 비리를 저지르고 줄줄이 사법처리 되고 있다. 하나같이 도를 넘은 탐욕의 결과들이다.


각자의 몫이 따로 있다. 제 몫이 아닌 것을 취하려니 탈이 나곤 한다. 모든 뇌물은 칼끝에 묻은 꿀과 같다. 달콤한 꿀만 보이지 시퍼렇게 날이 선 날카로운 칼날은 보이지 않는가. 뇌물 수수자들의 공통점은 모두 뾰족히 갈고리 진 낚시 바늘은 보지 못하고 미끼를 덥석 무는 물고기와 같다는 점이다.


미욱한 인간 행동의 결과는 스스로를 망치고 상대까지 파멸로 몰고 간다.


대법관 후보가 검사 재직 당시 처신을 바르게 하지 못해 법관으로서의 부적격 논란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 한 현직 판사가 법원 내부 통신망을 통해 당해 대법관 후보의 임명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 했다. 각자 제 갈 길이 있다. 며칠 전에는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가 만취한 상태에서 행패를 부리는 등 주폭(酒暴)으로 물의를 빚어 종국에는 법복을 벗었다. 법조인(法曹人)이 법도(法道)를 걸어야지 주도(酒道)를 가다가 크게 다친 사례다.


이번 한 향판(鄕判)의 술주정 사건은 사법부가 최근 주폭에 대해 그동안 이취자(泥醉者)라는 이유로 처벌 수위를 감경해오던 것을 중단하고, 양형기준을 강화, 엄격히 의법 조치키로 방침을 정한 직후 터진 사건이다.


이 땅 어디에도 ‘정의(正義)’가 세워지는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다. 법원이야말로 ‘인권 최후의 보루’이고 그 자체가 곧 ‘정의’라고 일컬어지는 곳이다.


지금 한국이 처한 형국이 마치 백년 전 서세동점(西勢東漸) 시기, 서구 열강이 밀려오던 때와 흡사하다.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은 새로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아시아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동안 잠잠하던 러시아가 한 세기만에 또 다시 동방정책을 추진하고 나선 것이다.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민첩히 대처해야 한다. 대통령은 외치(外治)에도 진력해야 하는 자리다.


현행 헌법은 대통령과 관련 제66조에서 “①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 ②대통령은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 ③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 ④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라고 권한을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막중한 자리다. 자리는 앉아야 할 사람이 앉아야 한다.


옛말이지만 수신제가치국(修身齊家治國)은 지금도 여전히 옳은 말이다. 우리는 또 다시 허리 굽혀 대(對)국민 사과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아야 했다. 부패 권력으로는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가 없다.


대권(大權) 도전을 선언한 후보군들을 보니 타천(他薦)은 없고 대다수가 자천(自薦)들이다. 우리에게 진정한 지도자, 대통령 감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찾아내지 못하는 것인지… 이것이 우리의 한계인가 생각하니 씁쓸한 마음이 든다.


동량지재(棟梁之材) 하나 키워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다. 물건은 쓰임새가 따로 있다. 서까래나 울타리로 쓰일 나무를 대들보나 기둥으로 쓸 수는 없지 않은가.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