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 전 이맘때, 필자는 한 지인의 결혼식 참석 차 태평양 한 가운데에 떠 있는 하와이 제도 중 하나인 마우이(Maui)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이 섬에 가면 지상에서 가장 크다는 분화구가 있는 할레아칼라 화산이 있다. 휴화산으로 높이 3천55m에 분화구 원주만도 32㎞나 된다. 이는 뉴욕 맨해튼과 맞먹는 거대한 분화구다. 테두리의 높이가 바닥에서 760m 이상 되는 분화구만도 여러 군데가 있다.
하와이의 전설에 의하면 천지가 창조된 후에 이곳에서는 태양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바람에 낮의 길이가 짧았다. 때문에 주민들은 일을 할 시간이 부족하고 삶을 즐길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다. 일조량도 적어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이에 섬의 신(神)이기도 한 반신반인(半神半人)의 마우이가 주민들의 이 같은 불평을 듣고는 낮 시간을 길게 하기 위해 섬에서 가장 높은 분화구에 올라 덫을 놓아 태양을 붙잡아 두었다. 그리곤 난폭한 태양신에게 낮 시간을 길게 할 것을 요구했다. 마우이는 태양신으로부터 앞으로 섬 위를 천천히 지나가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지금까지도 태양신은 약속을 잘 지켜오고 있으며 할레아칼라 산 위에 자신의 안식처인 ‘태양의 집(House of Sun)’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 후로 이곳에서는 한밤을 제외하고 연중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고 있으며 낮의 길이가 길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미국인들은 자칭 마우이를 지상 낙원이라 부르며 미국 10경 가운데 하나로 꼽기도 한다.
올 여름 한반도 산하(山河) 전역이 더위를 먹었다. 어느 해 보다 힘겨운 여름을 보내고 있는 시민들이다. 태양 볕은 충분히 쬐었다. 진정 마우이 신이 있다면 이제 산 정상에 붙잡아 매어 놓았던 태양을 그만 놓아 줄 때도 된 것 같다.
그제 가을이 시작된다는 입추(立秋)도 지났다. 절기로 보면 더위가 한풀 꺾여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올 때도 되었건만 여전히 바깥 볕이 뜨겁다. 어제 아침엔 기온이 조금 떨어진듯 했으나 여전히 염천(炎天)이다.
기상청으로부터 연일 폭염특보가 내려지고 있다. 무더위가 지속되어 시민들은 밤잠을 설치고 있다. 도심 곳곳에서 부분 정전사태까지 벌어지는 등 전력도 한계치에 다다라 블랙아웃(Black out) 직전에까지 이르렀다.
열대야(熱帶夜) 기록이 시작된 이후 가장 긴 연속기록을 세우고 있다한다.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 아니라 차라리 타들어 가는 올 여름이다. 깊고 깊었던 연못과 물웅덩이, 강물도 말라 바닥을 드러냈고 농작물도 빨갛게 타들어 갔다.
살인적인 폭염이 지속되자 수도권 시민들의 식수원인 팔당호마저 녹조현상이 발생해 수돗물에 비상이 걸렸다.
시민들은 무더위로 지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다행히 영국 런던에서 들려오는 올림픽 메달 소식, 낭보덕분에 더위를 잠시 잊기도 하는 시민들이다.
세월의 흐름은 되돌릴 수 없는가보다. 농가월령가에서도 “칠월이라 맹추(孟秋)되니 입추 처서 절기로다/화성(火星)은 서쪽으로 흐르고 미성(尾星)은 중천이라/늦더위 있다 한들 계절을 속일소냐/빗소리도 가볍고 바람끝도 다르도다.”하고 노래했다.
올 여름은 우리에게 너무나 길고 무덥다. 지난 여름에는 본란에서 염제(炎帝)과 동장군(冬將軍)에 대해 이야기 하며 옛 사람들이 보양식 등을 통해 건강한 여름나는 방식을 소개했던 기억이 난다.
제아무리 더위가 맹위를 떨친다 해도 며칠 못 갈 것이다. 이제 남은 절기로는 더위도 가시고 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처서(處暑), 찬이슬 내려 가을 기운 더해 준다는 백로(白露)가 기다리고 있다.
가을맞이 준비를 해야 하겠다. 가뭄이 오래 지속됐지만 그래도 농촌 들녘에선 곡식이 영글어가고 있다.
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