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현린 칼럼
정치인과 天動說
원기자
2012. 10. 2. 10:48
정치인과 天動說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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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인 한 사람이 말했다. 이 세상에 “괜히 왔다 간다”고. 이에 반해 비판철학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독일의 임마뉴엘 칸트는 생을 마감하면서 임종 시에 “이것으로 족하다”는 말을 남겼다. 똑같이 한 세상을 살다가는 사람의 마지막 말이 이처럼 달랐다. 인생은 괜히 왔다 가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생명체 가운데 인간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 여름철 매미는 세상에 나와 한번 울기 위해 짧게는 2년, 길게는 17년간을 땅속에서 애벌레로 지낸다 한다. 이를 알면 가히 생명에의 외경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물며 인간으로 태어나서야. 불교에서는 한 나라에서 태어나는 데에도 1천겁의 세월을 요한다고 한다. - 겁(劫) ; 사방 40리에 달하는 큰 바위를 백년에 한 번씩 하늘의 천사가 내려와 얇은 옷으로 스치고 지나가는데 이 바위가 모두 다 닳아 없어지는 세월-. 이렇듯 몇 천겁의 세월이 흐르고 인연이 닿아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다. 어찌 괜히 왔다 간다고 하는가. 또 어찌 생을 가벼이 여길 수가 있는가. 실명하여 수 십 년간을 맹인으로 지내다가 개안수술로 세상을 보게 된 한 시민은 “폭풍한설 찬바람조차도 신기하고 소중하더라”고 하였다. 행복과 불행은 재물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느끼느냐에 달려 있다. 금은보화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 욕심 많은 인간의 마음이다. 풍광이 좋아 우리가 자주 찾는 서울의 북한산과 도봉산도 국가나 그 소유자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아는 등산객의 것이다. ‘괜히 왔다 간다’라는 말은 대선 출마자들에게 해당하는 말인 성 싶다. 싸움판이 점입가경이다. 상대방 흠집 내서 만신창이를 만들겠다는 기세들이다. 권력욕과 명예욕에 사로잡혀 일단 출마하고 보자는 식의 후보들이다. 경솔히 출마하여 검증과정에서 ‘괜히 출마했다’ 하지 말고 깊은 사려 뒤에 출마하기를 바란다. 후회는 언제나 뒤에 오는 법이다. 대선 후보들은 후보 검증 시스템에 의해 과거의 모든 것이 다 비치는 명경대 앞에 서야 한다. 이 거울 앞에 서서 꺼릴 것 없고 자신 있는 인사는 출마해도 좋다. 지금 너도 나도 ‘나 아니면 안 돼’ 하고들 출마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 이 마당에 ‘내’가 아니라 ‘너 아니면 안 된다’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보일까. 한 때 한 성직자의 ‘내 탓이오’라는 말이 세인의 마음을 움직인 적이 있었다. 겸양은 시의 고금과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미덕이다. ‘너 아니면 안 된다’고 상대방을 치켜세우는 정치인 어디 없는가. 있다면 그 사람의 덕을 높이 사서라도 대통령으로 추대해 봄도 좋을 듯하다. 오늘날 발상 전환의 대표적 표현으로 쓰이는 용어가 ‘코페르니쿠스적 전회(轉回)’이다. 당시 다수설이던 천동설(天動說)을 부정하고 지동설(地動說)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는 옳았다. 이제 자기중심적 근시안에서 벗어나 과감히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하여야만 모든 것이 풀릴 수 있다. 천동설이 뒤집힌 지도 수 세기가 흘렀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발자국도 띠지 않고 제자리에서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이들이 어떻게 정치를 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들은 아직도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한마디로 이들은 여전히 자기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고 믿는다. 사실 언뜻 눈으로 보기에는 천동설이 옳은 것 같다. 해와 달, 별 이 모든 것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자신을 중앙에 놓고 돌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 지동설이 나타나기 전에는 천동설은 너무도 자연스런 통설로 여겨졌었던 것이다. 하기야 천체망원경으로 우주한번 관측해 보지 못한 정치인들이니 이들이 천동설을 믿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21세기에 살면서 ‘나 아니면 안 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정계를 떠나면서 ‘나 아니어도 된다’ 하고 떠난 이를 필자는 우리나라에서 보질 못했다. 미국 초대 대통령을 지낸 조지 워싱턴은 임기가 끝나갈 무렵 주위로부터 다시 대통령에 나설 것을 권유받았으나 ‘나 아니어도 된다. 민주주의의 전통을 세워야 한다’며 정계를 떠났다. 이 사람이야말로 ‘이것으로 족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생을 산 사람이다. 대선 주자들에게 권한다. 한번쯤 천문대에 가서 망원경을 들여다보라고. 우주천체가, 세상이 과연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가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