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인(思索人)으로 행동하는 한 해 되길
사색인(思索人)으로 행동하는 한 해 되길/원현린 주필(主筆)/ 2023.01.02

계묘년(癸卯年) 새해가 밝았다. 12지지(地支) 가운데 4번째 동물에 해당하는 토끼의 해다. 토끼는 예부터 민첩하고 지혜로운 동물의 상징으로 여겨 왔다. 이러한 토끼의 빠름을 비유하는 이야기는 많다.
주지하다시피 「삼국연의(三國演義)」에 등장하는 관운장의 애마, 적토마(赤兎馬)가 있다. 천하에서 가장 빨리 달린다는 준마(駿馬) 이름에 토끼 토(兎)자가 들어있다. 당시에 토끼가 빠른 동물의 상징으로 꼽혔기 때문이다. 흔히 흙 토(土)자로 아는 이들이 많을 테다. 이 밖에 빠른 기세로 달아나는 토끼의 재빠른 동작을 칭하는 탈토지세(脫兎之勢), 토끼가 달리고 물오리가 날아오른다는 뜻으로 아주 빠름을 비유하는 토기부거(兎起鳧擧), 토끼가 내달리고 송골매가 떨어진다는 뜻으로 글씨의 필세(筆勢)가 씩씩하고 굳셈을 비유해 이르는 토기골락(兎起골落) 등이 있다.
이렇듯 토끼는 빠른 동물의 대명사다시피 했다. 하지만 토끼와 거북이 우화에서 보듯이 자신의 빠른 능력만을 자만한 자는 꾸준히 노력한 자를 이기지 못했다.
우리는 너무 빨리 달려왔다.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성장일변도의 경제정책을 급속히 추진하던 당시, 공해(空害)를 유발해 산자수려(山紫水麗)한 강산을 오염시킨다는 내용의 환경 고발 기사는 조국의 경제 발전을 저해시킨다는 이유로 보도가 금지된 시절도 있었다. 그 결과인지 지금은 세계 7번째로 인구 5천만 명 이상,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인 국가를 일컫는 ‘5030 클럽 국가’ 반열에 오르기는 했다.
이제는 환경이다. 자연은 한번 훼손되면 되돌리는 데 막대한 비용과 장구한 세월이 소요된다. 오염된 땅을 후손에게 물려줄 수는 없다.
자연환경과 전통문화를 보호하고 여유와 느림을 추구하며 살아가자는 국제운동으로 ‘슬로시티(slow city) 운동’이 있다. 근자 들어 성장 정책보다 ‘느림의 철학’을 내세우며 천천히 전통과 자연을 보전하면서 나아가자는 지자체들이 늘고 있다.
연전에 영월 등 강원도 일대를 둘러보는 지방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지역 곳곳에 ‘느림길’, ‘느림의 시간이 담긴 쉼터’ 등의 현수막과 간판이 보였다. 나는 어쩌다 등산을 가도 일행들과 산을 오르면서 경쟁이라도 하듯이 뛰곤 했었다. 이제 와 생각하니 숲속에서조차 내달리곤 하던 발걸음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우리를 두고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국민이라고 지적하는 외국인들이다. 조급한 마음에 무리하게 일을 진행하다가 오히려 일을 망치는 것을 비유하는 말에 발묘조장(拔苗助長)이라는 성어(成語)가 있다.
송(宋)나라 사람이 자기가 심은 곡식의 싹이 자라지 않는 것을 민망히 여겨 싹을 뽑아 올렸다. 그는 망연히 돌아와 그 집 사람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오늘은 피곤하도다. 내가 싹이 자라는 것을 도와 주었노라" 하거늘, 그 아들이 달음질하여 가 보니 싹이 모두 말라 죽어 있었다. 「맹자(孟子)」 ‘공손추장구(公孫丑章句)’에 나오는 말이다. 매사 시기에 맞춰 진행해 나가야 한다는 상식을 가르치는 교훈이다.
인디언들은 말을 잘 타는 민족으로 알려졌다. 그들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인디언은 말을 타고 달리다가 산등성이에 이르면 가끔씩 말에서 내려 자신이 달려온 쪽을 바라보곤 한다. 지친 말을 쉬게 하려는 것도 아니요, 자신이 힘들어 쉬어 가려는 것도 아니다. 너무 빨리 말을 달렸기 때문에 미처 따라오지 못한 자신의 영혼을 기다리느라 말을 멈춘다는 것이다. 이렇게 쉬다가 영혼이 가까이 왔다고 생각되면 다시 말을 달리곤 한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인디언 전설 한 토막이다.
그러잖아도 오늘을 사는 현대인 상당수는 영혼이 황폐화됐다고들 한다. 말할 것도 없이 지금 이 글을 쓰는 필자의 영혼이 그럴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너무 빨리 달려, 정작 인생에서 소중한 것들을 잃지나 않았는지 새해 벽두에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올해는 인문주의 철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이 강조하는 ‘건전한 사회’를 지향하는 길에서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사색인으로 행동하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 속도만 내는 인생보다 깊이를 더하는 삶이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