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因緣)
[인연(因緣)]/ 인천저널 제109호/6월12일/원현린 주필(主筆)
달력을 보면 오월은 각종 기념일로 장식돼 있다시피 하다. 많은 기념일 가운데 어린이 날(5일), 어버이날(8일), 스승의 날(15일), 부부의 날(21일), 부처님 오신 날(음력 4월 8일)이 꼽힌다.
이들 기념일의 의미를 찾다 보면 ‘인연(因緣)’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석탄일(釋誕日)도 지났다. 본고에서는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을 떠올려 본다.
인연의 사전적 풀이를 보면 ‘어떤 사물(事物)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關係)나 내력(來歷), 또는 연줄이라고 나온다. 불교에서는 일체(一切) 중생(衆生)은 인(因)과 연(緣)에 의(依)하여 생멸(生滅)한다고 한다.
인연은 범어 hetupratyaya의 번역이다. 결과를 낳는 내적인 직접 원인이 인(因, hetu)이며 주변에서 이를 돕는 간접적인 원인이 바로 연(緣, pratvava)이다. 인연은 연기(緣起)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살아가는 동안 사람과의 관계를 비롯하여 일어나는 일 등 모든 것이 인연 아닌 것이 없다. 우리는 이를 인연을 만나고, 인연과 마주친다고 한다.
부모와 자식 간의 만남, 부부간의 만남, 형제간의 만남, 사제지간의 만남 등 각각 만나기 위한 시간이 다르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헤아릴 수 없는 무한대의 긴 추상적인 세월을 칭하는데 ‘겁(劫)’이라는 단위를 사용한다.
예로 들어 인용해본다.
1천겁은 한 나라에 태어난다. 2천겁은 하루 동안 길을 동행한다. 3천겁은 하룻밤을 한 집에서 잔다. 4천겁은 한 민족으로 태어난다. 5천겁은 한 동네에 태어난다. 6천겁은 하룻밤을 같이 잔다. 7천겁은 부부가 된다. 8천겁은 부모와 자식이 된다. 9천겁은 형제, 자매가 된다. 1만겁은 스승과 제자가 된다.
흔히들 옷깃을 한번 스친 인연도 5백겁 인연이라 한다. 이처럼 만남의 인연은 참으로 기막힌 인연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우리의 인간관계는 그냥 어쩌다 만나서 대충 살다가는 인생이 아니다.
만남의 소중함을 생각나게 하는 가정의 달로 불리는 지난 오월이었다. 가족 구성원 간의 귀한 인연을 떠 올리면서 가정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봄도 좋을 성싶다.
자신의 과거를 알고자 할 진대 오늘 나의 형편을 보고, 미래를 알고자 할진대 오늘 내가 여하히 사고하고 행동하는 가를 보라 했다.
수신제가치국이라 했다.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갈고 닦아 심성을 높은 경지로 끌어 올리지 못한 사람이 가정을 화목하게 할 수가 없다. 한 집안조차 가지런히 하지 못하는 사람이 큰 나라를 다스릴 리 만무하다.
가족 간, 사회 구성원 간의 모든 만남은 인연 따라 왔고 그 시절 인연이 끝나니 헤어지고 떠나가는 것이다.
한번 맺은 인연 쉽사리 버리고 끊지 말고 가능하면 오래도록 지속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선연(善緣)이 아닌 악연(惡緣)이다싶으면, 시절인연이 여기까지구나 하고 과감히 끊는 것도 그나마 좋은 인연으로 맺어져 한때 행복했던 순간이라도 남길 수 있다. 선연과 악연에 따라 만남이 행운이 되기도 하고 잘못된 만남으로 불행이 되기도 한다.
법정(法頂)스님은,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말라했다. 법정이 남긴 인연에 관한 한마디 경세어(警世語)를 인용해본다.
“진정한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은 구분해서 인연을 맺어야 한다. 진정한 인연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좋은 인연을 맺도록 노력하고, 스쳐가는 인연이라면 무심코 지나쳐 버려야 한다.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헤프게 인연을 맺어놓으면 쓸 만 한 인연을 만나지 못하는 대신에 어설픈 인연만 만나게 되어 그들에 의해 삶이 침해되는 고통을 받아야 한다. 인연을 맺음에 너무 헤퍼서는 안된다.…”
그렇다. 인연의 법칙을 선하게 엮는 지혜가 좋은 인연을 만나는 지름길이라는 말은 옳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