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史家)를 의식하라
사가(史家)를 의식하라/2008/1/24
지금 대통령직 인수위원들의 정권인수 작업이 한창이다. 일부 국민은 인수위원들이 인계인을 향하여 호통을 치는 것을 보고 통쾌하다 하고 일부는 좀 지나치다 한다. 정권은 한번 넘어가면 이렇다.
그래서 누구나 정권은 한번 잡으면 끝까지 넘겨주지 않으려 한다. 이것이 권력의 속성이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겠다.
권력의 맛을 보면 그런가보다. 권력의 맛이 어떤지는 필자는 알 수 없다. 먹어보질 못했으니 모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과거 보통사람을 표방했던 노태우 정권과 문민정부를 내세웠던 김영삼 정부시절, 청와대를 출입하면서 옆에서 지켜본 적은 있다. 간접경험은 한 셈이다. 당시에도 역사는 반복되어 정권이 바뀌자 권력을 탐했던 이들은 여지없이 감옥에 갔다.
줄 대기가 한창이다. 인수위에 들어간 인사를 부러워하기도 한다. 공직에 있는 필자의 한 친구도 “과거 10년 정권에서 밀려나 변두리에 있었으니 이번에는 중용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확실치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기대감을 갖고 기다린다는 말을 했다. 이 역시 자칫하면 보상심리 작용으로 지난 정권들과 똑같이 한풀이 정치, 보복성 정치를 하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그래서는 안 되겠기에 그 친구에게 한마디 충고를 했다. “그러면 안 된다”고.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오죽 실정을 했으면 지난 10년을 일러 ‘반면교사(反面敎師) 10년’이라 하겠는가. 정치를 장밋빛으로 보면 안 된다고 했다. 정치는 본래 그런 것이다. 그래야 실망의 폭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어쩌랴. 이 땅에 발 디디고 사는 한에서는 좋은 정치를 기대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은가. 실상 정치인은 그렇지 않은데. 이를 칭하여 한 정치학자는 ‘정치의 패러독스(Paradox)’라 했다.
지난 대선에서 승리한 한나라당 측 인사들이 곳곳에서 때 이르게 ‘우리 여당’이라고 표현하다가 머쓱한 표정으로 ‘예비여당’이라고 정정하는 모습을 보았다. 승리감에 도취되어 무의식적으로 나온 표현이리라. 너무 오래도록 취해있으면 안 된다. 깨어나야 한다.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였기에 하는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도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고 했다.
인수위 측은 보아오질 않았는가. 지나간 정권들이 무엇을, 어떻게 잘못하였는가를. 보고 또 보아온 우리다. 잘못을 똑바로 목도하고도 되풀이하는 이가 있다면 이야말로 크게 어리석은 자이다. 지나간 일을 탓하고 한탄만 해봤자 소용이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은 나라의 앞날을 설계하고 실천할 때다. 우리에겐 전철(前轍)을 밟을 시간이 없다.
이제 새 정부 출범도 꼭 한 달 남았다. 역대 정권들도 초기에는 잘 하려고 애를 쓰고 노력했었다. 그러다가 곧 초심을 망각하고 하나같이 기고만장(氣高萬丈)하다 끝났다. 처음과 끝이 한결같기란 그리 쉽지 않은 것이다. 정치하는 자 역사를 의식해야 한다. 오늘 나의 행동이 후세 사가(史家)들에 의해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를 의식한다면 행동에 크게 어긋남이 없을 것이다.
‘초심 잃지 않고 국민 섬기겠습니다’라고 써 붙여 놓고 회의 중인 모습이 언론에 비추곤 한다. 말과 글도 좋지만 실천이 중요하다. 이명박 예비정부에게 주문한다. 부디 초심을 잃지 말라고.
예전 왕조시대에도 인재를 기용함에 있어 측근 기용에 신중하고 경계했던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내부에서 이명박 당선자의 측근이 공천심사위원에 포함됐다 하여 박근혜 전 대표와의 불화가 계속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탈당도 불사하겠다 한다.
지나간 모든 정권들도 처음에는 작은 정부를 표방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거대 공룡처럼 몸집을 불려나갔다.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하는데 큰 역할을 한 공신은 많다. 저마다 일등공신이다. 허나 정승 판서 자리는 한정돼 있다. ‘강을 건넜으면 배를 버려라’, 그렇지 않으면 지나간 우(愚)를 똑같이 범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