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현린 칼럼

헌법수호가 곧 역사지킴이다.

원기자 2012. 10. 2. 11:43

헌법수호가 곧 역사지킴이다./2008/2/21

서기 2008년 2월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마당. 너른 광장에는 각계각층의 국민 4만5천여 명이 대한민국 제17대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하고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도 한국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한 사절단이 외빈석을 메우고 있었다. 일본과 중국 등 가까운 이웃나라 대표들이 자리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고 유럽과 태평양을 건너 먼데서 온 미국 등 각국의 사절단 모습도 눈에 띄었다. 주요 외빈으로는 라이스 미 국무장관, 빅토르 줍코프 러시아 총리, 압둘 칼람 인도 전 대통령,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전 총리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하인즈 워드 미 프로축구선수도 보였다. 한국의 새 대통령 취임식 장면은 실로 장엄해 보였다. 보는 국민들의 가슴도 뿌듯했다.

식순에 따라 이명박 대통령이 오른손을 들어 헌법에 명시된 대로 취임에 즈음하여 취임선서를 했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선서문이 낭독되는 동안 식장은 정적이 흐르고 엄숙했다. 이어 우레와 같은 박수 속에 새 대통령 취임식이 모두 끝났다.

필자가 며칠 앞서 취임식장에 가본 광경이다. 그렇다. 헌법을 지키는 일이 대통령이 할 일이다. 우리 헌법 1조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은 개폐되기 전까지는 국민이면 모두가 반드시 지켜야 할 법체계상 최상위법이다. 모든 법률은 헌법 아래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위헌법률은 존재할 수가 없다.

헌법제정권은 국민에게 있다. 제 권력도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국민에게 있다. 그러니 다시는 그 어느 누구도 헌법을 모독하면 안 된다. 결코 ‘그놈의 헌법’이 아니다. 특히 헌법을 수호할 헌법상 의무가 있는 대통령에게 있어서야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하겠다.

대통령의 직책은 헌법 규정대로 ▲헌법 준수 ▲국가 보위 ▲평화적 통일 ▲자유와 복리증진 ▲민족문화창달 등이다. 모쪼록 선서 당시의 초심을 잃지 말고 재임기간 대통령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해 주길 국민은 바란다.

역대 대통령 모두가 이 같은 선서를 하고 대통령직에 올랐다. 그 중에는 헌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대통령도 있었고 헌법을 무시한 대통령도 있었다. 당연히 이들은 모두 명예스럽지 못하게 대통령직을 마쳤다.

오는 25일 출범하는 이명박 정부는 어디까지나 대의명분에 입각하여 큰 정치를 펼칠 것을 주문한다. 자칫 지나친 실용주의만을 내걸다 보면 빵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할 수도 있다. 이미 적색등이 켜진 인문학의 위기를 더 이상 방치한다면 우리가 지금 쌓고 있는 모든 것이 사상누각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건조물도 풍부한 정신적 토대 위에 건설돼야 그 튼튼함을 오래 보존할 수 있다. 숭례문 참화사건도 우리가 정신적 토양을 잃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혼(魂)이 나간 것은 빈껍데기일 뿐이다.

이미 야당은 여당이 됐고 기존의 여당은 야당이 됐다. 여당은 국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 만약에 실정을 한다면 정권을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끝까지 버티거나 장기집권을 획책한다면 국민저항에 직면하게 되고 종국에는 현 정부처럼 실패한 정권으로 이름을 남기게 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 했다. 웬만하면 재집권도 시켜주는 것이 우리 국민들이다.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도. 헌법을 욕되게 하거나 ‘국민 노망’이니, ‘집에 가서 애를 보라’느니 하는 등의 국민을 우롱하는 언사도 서슴치 않았던 정부다.

워낙 잘못했기에 국민은 더 이상 기회를 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게 된 소이가 여기에 있다. 수신(修身)이 안 된 인사들이 제가(齊家)를 할 리 만무하다. 이런 이들이 나라 살림을 맡았으니 치국(治國)이 잘 될 리 없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지는 숭례문이 불타는 것을 보고 ‘5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이 과연 역사를 지킬 능력이 있는가?’하고 혹평했다. 심히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에게 과연 역사를 지킬 능력이 없는가. 지난번 본란에서 필자는 후세 사가(史家)들을 의식하라고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시점이 꼭 나흘 남았다. 헌법을 지키는 것이 역사를 지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