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와 금강산
황사와 금강산/2008/3/20
금강산을 찾은 지난 주말의 날씨는 쾌청했다. 우수·경칩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도 겨울이었다. 새싹이 돋기엔 이른지 산속은 여전히 잎이 떨어진 나뭇가지와 바위만이 나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산은 온통 흰 눈으로 뒤덮여 설산(雪山)이었고, 겨울 이름 그대로 개골산(皆骨山)이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중국에서 편서풍을 타고 날아온 황사가 한반도 상공을 뒤덮곤 한다. 봄철만큼은 결코 금수강산이 아니다. 황사바람 앞에서는 금강산도 자유롭지 못했다.
금강여정을 끝내고 필자가 떠나는 지난 일요일 한낮, 금강산은 대낮인데도 반짝이는 금강석 빛을 잃고 몽골 사막에서 불어온 뿌연 황사에 뒤덮여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원래 금강산이라는 이름은 금수강산(錦繡江山)에서 따온 금강산(錦江山))도 좋을 듯싶지만 봄이면 아침햇살에 바위들이 금강석(金剛石)처럼 빛난다고 하여 금강산(金剛山)이라 불린다. 여름철에는 녹음이 무성하다 하여 봉래산(蓬萊山), 가을에는 온 산에 단풍이 아름다워 풍악산(楓嶽山), 겨울에는 눈 덮인 바위들만 우뚝우뚝 솟아 있어 뼈만 앙상하다 하여 개골산(皆骨山)이다. 이밖에도 금강은 눈 내린 겨울 산을 설봉산(雪峰山), 멧부리가 서릿발 같다 하여 상악산(霜嶽山), 신선이 산다 하여 선산((仙山) 등으로도 불린다.
한 시인은 “금강산은 그냥 금강산이 아니다”라고 했다. ‘아! 금강산’이라고 불러야 옳다고 했다. 그만큼 아름답다는 표현일 게다. 신라의 최치원은 구룡폭포 앞에서 ‘천장백연 만곡진주(千丈白練 萬斛眞珠; 천길 흰 비단을 드리웠는가. 만 섬 진주알을 뿌리었는가.)’ 라고 노래했다. 계절마다 금강산을 찾았다는 김삿갓은 ‘송송백백암암회, 산산수수처처기(松松栢栢岩岩廻, 山山水水處處奇;소나무 소나무 잣나무 잣나무 바위 바위 돌아드니, 산산 물물 가는 곳마다 신기하여 딴 세상이로구나.)’라고 금강을 시로 표현했다. 중국의 시인 소동파가 “고려국에 태어나서 금강산을 한번 보는 것이 소원”이라 했고 일본인들도 “금강산을 보지 않고서는 산수(山水)를 논하지 말라”고 했을 정도로 금강을 극찬했다. 시조시인 조운은 ‘구룡폭포’라는 시조에서 ‘사람이 몇 생이나 닦아야 물이 되며 몇 겁(劫)이나 전화(轉化)해야 금강에 물이 되나! 금강에 물이 되나!’라고 절창(絶唱)하고 있다.
이름난 고려시인 김황원이 부벽루에 올라 대동강의 아름다움에 시어가 모자라 붓을 꺾고 울었듯이, 금강의 아름다운 풍광에 숨이 턱 막힌 영국의 작가이자 지리학자로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이란 기행문을 쓴 이사벨라 버드 비숍여사 또한 다음과 같이 금강을 최상급으로 표현했다. “아, 나는 그 아름다움, 그 장관을 붓끝으로 표현할 자신이 없다. 진정 약속의 땅인저! 진정코!”. 춘원 이광수도 금강산의 아름다움에 대해 “글로 표현하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이렇듯 당대의 문장가들조차 절경에 비명을 지르고 붓을 내려놓게 한 금강산은 천하제일 명산이다.
그러나 이제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북방에서 불어오는 황사 때문이다. 황사의 폐해는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심각하다.
필자는 이번 금강기행에서 우리가 황사의 발원지인 몽골에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 사막화를 방지하자는 이유가 여기에 있음을 확인했다.
이름처럼 빛나는 다이아몬드 금강산을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몽골의 황사에 맞서야 하겠다. 이대로 가다가는 금강을 극찬한 역대 금강예찬론들이 무색하게 될지도 모른다. 시인묵객들이 이미 지어놓은 시구를 고치고 비숍이 정정판을 내겠다고 하기 전에 황사를 막아야 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더이상 우리나라는 ‘산자수려하고 명경옥수와 같은 아름다운 나라’로 불릴 수 없을 게다. 금강산은 우리의 소중한 자연유산이다. 철따라 고운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산이 금강산이다. 그러나 누런 황사 옷만은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