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현린 칼럼

아직도 멀었습니다

원기자 2012. 10. 2. 11:53

아직도 멀었습니다/2008/4/17

중국 주(周)나라 때 기성자라는 싸움닭을 전문으로 훈련시키는 조련사가 있었다. 투계(鬪鷄)를 몹시 좋아하는 왕이 이 이야기를 듣고 싸움닭을 기르도록 했다. 열흘 만에 왕이 묻기를 “싸울 만한 닭이 되었는가?”하므로 조련사는 대답하기를 “아직 멀었습니다. 지금 건성으로 사나운 척하며 제 기운만 믿고 있습니다.”하였다. 열흘이 지나 왕이 또 물으므로 “아직도 멀었습니다. 다른 닭의 소리만 듣거나 모양만 보아도 덤비려 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또다시 열흘이 지나자 왕은 답답한 나머지 같은 물음을 되풀이했다. “아직도 안 되었습니다. 다른 닭을 보면 눈을 흘기고 기운을 뽐내어 여전히 투지가 넘치고 있습니다.”하였다. 닭싸움을 빨리 보고 싶은 왕은 또 열흘이 지나 물으니 “이젠 거의 되었습니다.”하고 시원한 대답이 나왔다. 왕이 이유를 물은 즉 “다른 닭이 울며 덤벼도 조금도 태도를 변치 않습니다. 그래서 바라볼 때 마치 나무로 만든 닭과 같으니 비로소 닭으로서의 덕을 온전히 갖추었습니다. 그 위엄에 눌려 다른 닭이 감히 덤비지 못하고 반대로 달아나버립니다.”라고 답했다.

장자(莊子)에 나오는 목계(木鷄)이야기다. 승패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천하무적의 강자라는 뜻일 게다.

물고 물리고, 헐뜯고 할퀴던 총선도 끝났다. 국민들은 당초 후보들이 내세웠던 국민을 위한 진정한 정치를 주문하고 있다.

국민들은 또 속았는지 모른다. 선거가 끝나기가 무섭게 당리당략에만 매달리고 있다. 국민들은 정치가 다 그런 줄 알면서도 좋은 정치를 기대하며 투표에 참여했다. 이를 정치의 패러독스라고 하던가.

정치를 잘해보겠다는 태도들이 아니다. 마음가짐들이 덜돼 있다. 계파를 따지고 계열을 가리고 있다.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던 모습들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아직도 승부가 나지 않은 것처럼 다투고 있다. 한 뿌리에서 났음에도 서로 못 잡아먹어서 난리들이다. 이런 판국이니 국민 앞에 숱하게 내걸었던 공약(公約)들을 지킬 리 만무하다. 공약(空約)으로 끝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유권자들은 또다시 4년을 기다려야 한다.

총선 전 탈당 인사들의 복당 문제로 양대 정당이 자중지란(自中之亂)을 겪고 있다. 복당측은 ‘내가 내 집을 찾아가려는데 왜 못 들어가게 하느냐’이고 수비측은 ‘나갈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다시 들어오려 하느냐’며 다투고 있다. 원래 한 뿌리에서 나왔는데 싸우는 모양새가 영 좋아보이질 않는다.

위나라 조조의 아들 조비가 동생 조식을 해하려고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시를 짓게 했다. 만약 시를 완성하지 못하면 죽일 참이었다. 자두연두기(煮豆燃豆艸+其) 두재부중읍(豆在釜中泣), 본시동근생(本是同根生) 상전하태급(相煎何太急)=콩대를 태워 콩을 삶으니, 콩은 가마솥 안에서 슬피 울고 있네, 원래 한 뿌리에서 나왔거늘, 무슨 원수를 져 어찌 그리 급하게 볶아대는가!

조식은 제시간 안에 ‘칠보시’(七步詩)로 불리는 이 시를 지어 목숨을 구했다. 그저 으르렁대고 싸우려고만 한다. 그러다가 남도 죽이고 자기도 죽는 것을 우리는 지나간 총선에서 보았다.

국회는 입법기관이다. 제17대 국회의원의 경우 5명에 1명은 1년간 단 한건의 입법발의도 없었다 한다. 직무유기를 한 셈이다. 이런 의원에게 세비를 주어온 국민들이다. 식충이 따로 없다. 먹고 일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바로 식충이다.

총선기간 내내 후보들은 너나없이 국민을 팔고 다녔다. 국민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지난 총선전(總選戰)에서 패군지장(敗軍之將)들의 거취가 뉴스거리가 되고 있다. 아무개는 해외로, 또 다른 아무개는 자택에서 칩거 등등이다. 한 낙선자는 “왜 약 올리냐?”며 총선이 끝난 지 꽤 여러 날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격앙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

단 한명이라도 좋다. 장자에 나오는 목계처럼 승패의 집착을 넘은 인물을 보고 싶다. 보기에 아직도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