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유감
스승의 날 유감/2008/5/15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우리는 일 년 내내 ‘교사’ ‘선생’ 하다가도 오늘 하루만큼은 좀 어색하지만 ‘스승’이라는 말을 쓴다. 해마다 이날이 오면 씁쓸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선 교사들이 그렇다고 한다. 가슴 뿌듯하고 자랑스러워해야 할 일선 교사들의 마음이 무겁다니 선뜻 이해가 가질 않는다.
행사고 뭐고 없애고 차라리 휴교 일로 하자고 한다. 아니면 스승의 날 자체를 없애자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지난해 인천지역 440개 초중고교 가운데 절반가량에 이르는 211개 학교가 수업을 하지 않고 휴교를 했다. 이유는 촌지수수설에 휘말리기 싫어서다. 이렇듯 스승의 날이 해를 거듭할수록 퇴색되어가고 있다.
요즈음에는 소풍가는 날이면 교사들도 스스로의 도시락을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게다가 수학여행을 가도 학생들을 인솔하는 교사들 또한 스스로 교통경비를 부담하라는 소리까지 듣다보니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왜 학생들이 부담한 수학여행 경비에서 교사들이 무임승차하느냐이다.
예전에는 소풍가는 날에는 반 아이들이 선생님께 드릴 김밥과 삶은 밤, 계란 등을 하나라도 챙겼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담임선생님께 드릴 점심도시락조차도 안된다 한다.
학교에 무슨 행사라도 있는 날이면 소위 촌지라는 금품이 오가지나 않나 적발하려고 학부형들 간에 도처에 감시의 눈초리가 번득인다는 것이 일선학교 교사들의 전언이다.
본분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학생을 나무랐다 하여 학생이 스승을 폭행하고 학부모가 학교에 달려와 ‘왜 남의 집 귀한 자식을 때리느냐’며 교사에게 모욕을 주는 예가 왕왕 언론에 보도되곤 한다.
일부 교사들은 이런 교권이 무너지는 풍토에 대해 “사도(師道)가 땅에 떨어졌는데 인도(人道)가 있겠느냐”며 한탄한다.
이렇듯 오늘날에는 스승에 대한 존경심은 사라지고 너와 내가 있을 뿐이다. 교사는 오직 교실에서 단편적인 지식만을 전달하는 수업만을 해야 하고 학생은 이를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오늘날 일선학교의 현주소다. 수업을 할 권리와 수업을 받을 권리만을 주장하는 세태가 됐다. 인격으로 맺어지는 관계가 아니고 단순히 기계적 관계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인문학의 위기가 불러온 결과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또 다른 이는 우리에게 언제 인문학이 있었기에 인문학의 위기라 하느냐며 반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래(古來)로 내려오는 경로효친(敬老孝親) 사상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인문학이 아닌가 한다. 인간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 철학이고 보면 사람의 도리를 담은 학문이 인문학이지 인문학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무슨 심오한 이론을 담은 철학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의 학창시절만 해도 학교에서 성적이 나쁘다거나 숙제를 안 해서 매를 맞고 집에 와도 아픈 표정을 짓지 못했다. 선생님한테 이러이러한 잘못을 해서 매를 맞았다 하면 엄친(嚴親)의 매서운 회초리가 또 한 번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학에서 인문학의 강좌가 폐쇄되는 것도 다 이와 무관치 않다고 본다. 경제지상주의 하에서 이익만이 잣대가 된다. 경제성만이 인정을 받는다. 여기에 윤리다, 도덕이다, 철학이다 하는 것들은 우리사회에서 그다지 대우받지 못하는 ‘하위가치’로 전락된 지 이미 오래다.
예전에는 엄한 가풍(家風)을 지닌 집안에서는 회초리를 비단보자기로 감싸 장롱 속 깊이 고이 간직했다가 자식이 잘못하면 꺼내어 훈육(訓育)에 사용하곤 했다. 장차 큰일을 하게 될 자식을 가르치는 보물이기에 함부로 아무데나 방치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였다.
스승의 날은 존치(存置)되어야한다. 요즘 같은 교단 분위기에서는 인격적으로 완성된 인간을 길러낼 수 없다. 전인교육(全人敎育)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아무리 교권이, 스승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해도 스승에게는 잘못된 학원의 풍토를 바꾸어 제자를 올바르게 가르치고 키워낼 의무와 책임이 있다. 권리 또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