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현린 칼럼

경로효친 유감

원기자 2012. 10. 3. 15:58

경로효친 유감
2008년 10월 15일 (수)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부모는 매사 자식이 먼저이다. 언제나 ‘나는 괜찮아’이다. 이런 얘기가 있다. 시골에서 소 팔고 논 팔아 자식을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시켜 공부시켰다. 부잣집에 장가 간 아들이 보고 싶어 다니러 왔다. 며느리가 오랜만에 올라오신 시부모님에게 고기를 사드리려고 외식을 하자고 했다. 아들이 갑자기 나서며 우리 부모님은 고기 못 드시니까 보리밥집으로 가자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신발을 신으면서 혼자말로 되뇌었다. “나도 고기 먹을 줄 아는데….”


제대로 못 먹고 못 입고 하던 어려운 시절, 자식에게 더 잘 먹이고 잘 입히기 위해 고기를 아예 못 먹는다고 거짓 아닌 거짓말을 해온 부모이다. 그렇게 해가며 키워온 자식이다. 그 깊은 부모마음을 자식이 알 리 만무하다. 자식에 대한 부모 사랑의 100분의 1만 해도 효자 아닌 자식이 없다는 말도 있다.


지난 주 본보에는 노인학대 사례가 늘고 있는데도 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방치되고 있다는 씁쓸한 기사가 보도됐다. 보도된 대로 인천시 노인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지난해 인천지역 노인학대사례는 94건으로 지난 2005년 61건에 비해 1.5배 가량 증가했다. 학대 사례 관리를 위한 상담은 521건에서 1천123건으로 크게 늘었다고 한다.


노인 학대는 드러나지 않는 사례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얘기다. 아무리 못났어도 자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식의 허물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이 부모 마음이다.


무너진 윤리의 결과가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존속 폭행·상해, 심지어는 살해까지 왕왕 보도되는 사례를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이 얼마나 끔직한 사건들인가. 예전 같았으면 한동안 입에 오르내릴 사건들이건만 요즘에는 그저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할 정도이다.


옛날에는 멍석말이라는 것이 있어 관가에 가기 전에 동네 사람들이 인륜을 저버린 패륜아에게 사형(私刑)을 가하였다. 동네 주민들이 죄인을 멍석에 둘둘 말아 초죽음이 될 정도로 뭇매를 가해 마을 밖으로 내쫓았다. 요즘 같으면 주민들의 이러한 집단행동은 집단 폭행죄 등으로 다스려지겠지만 법을 대신한 관습 형벌제도로 이해됐다. 경우에 따라 용인되기도 하였으니 하나의 관습법인 셈이다.


사회가 메말라도 너무 메말랐다. 이제는 신문에 웬만한 패륜행위가 보도되어도 그다지 충격으로 와닿지 않는 모양이다.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세인들의 관심에서 곧 잊혀진다. 형법에서 일반인에 대한 범죄보다도 존속에 대한 범죄를 더 중죄시하는 이유도 바로 인륜을 저버리면 안 된다는 취지의 입법정신에서이다.


얼마 전 노인의 날이 지났다. 각종 기념식장에 연설 원고마다 경로효친을 강조하는 내용의 문구가 들어 있었다. 그 때뿐이다. 이 또한 행사용 원고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나 세월이 흐르면 노인이 된다. 노인을 학대하는 것을 보고 자란 아이가 성인이 되어 제대로 노인을 공경할 리 만무하다.


삼강오륜이다 윤리도덕이다 하면 고루하고 전근대적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이는 그렇지가 않다. 인간의 도리이고 기본이다. 무너진 윤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인문학의 위기를 걱정하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노인 문제를 비롯 무너진 윤리도덕을 회복시키는 해법은 전적으로 교육에 달려 있다. 강한 민족, 부강한 나라가 되는 것은 오로지 사람을 사람답게 키워내는 교육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예부터 우리 민족은 효(孝)를 가장 큰 덕목으로 여겨왔다. 세월 탓인지 이제는 우리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겨왔던 효의 개념도 퇴색되어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참으로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다. 인간사회의 기본적 윤리인 삼강오륜을 전 국민이 줄줄이 외워대다시피 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이라 한다. 효를 행하고 싶어도 부모가 안 계셔서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있고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하고,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나무는 고요히 있으려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고,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려 하나 부모는 이미 기다리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현명한 사람은 후회를 남기지 않는 삶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