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현린 칼럼
중금속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
원기자
2012. 10. 3. 16:02
중금속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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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학생들이 자주 사용하는 학용품인 색종이, 지우개, 풀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됐다는 엄청난 기사가 나가도 무덤덤하다. 최근 일련의 광우병 파동이나 멜라민 사태에 비해 결코 비중이 낮은 뉴스가 아니다. 피해자가 바로 우리 아이들이다. 그런데도 분개하는 학부모도 별반 없는 것 같다. 세간의 화제거리도 못된다. 한 시민은 ‘우리나라 뭐 제대로 되는 게 있는가?’, ‘이젠 놀랍지도 않다’, ‘웬만한 사건에는 무감각해졌다’고 한다. 불감증에 걸린 것인가. 아이들이 건강에 치명적인 중금속을 가지고 노는데도 어른들은 태연자약하다. 우리를 더욱 화나게 하는 것은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수개월 동안 시정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 보도에 따르면 초등학생들이 사용하는 지우개에서 환경호르몬 의심물질인 ‘프탈레이트계 가소제’ DEHP가 검출됐다. 내분비계 교란을 일으킬 수 있는 이 위험물질은 대부분의 지우개에서 검출됐으며, 일부 중국산 제품에서는 기준치의 380배가 검출됐다. 그밖에 2개사 색종이 제품에서는 유해 중금속인 바륨이 기준치보다 많이 들어 있었고, 문구용 풀에서는 암을 유발할 수 있는 포름알데히드가 검출됐다. 이 때문에 이들 제품에는 강제 수거명령이 내려졌다. 하지만 수거·개선명령에도 불구하고 업체들은 전혀 문제를 시정하지 않은 채 판매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 국민 건강을 해치는 엄청난 불법행위를 적발하고도 당국은 그저 수거·개선명령이나 내리면 그만인가. 이런 나라에서 아이를 키워야하는 부모들은 억장이 무너진다. 문방구는 아이들의 만물상이다. 없는 게 없을 정도이다. 장난감부터 시작해서 색종이, 지우개, 풀 등등. 하도 센 사건만 접하다 보니 웬만한 사건에는 미동도 안하는 우리 국민이다. 뉴스 비중이 메가톤급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한다. 이보다 더 중대한 사건이 무엇이란 말인가. 환경호르몬은 극소량으로도 성장장애를 일으키고 , 암 등 각종 질병을 유발시키는 해로운 물질이다. 어른들의 상도덕에 어긋나는 장삿속이 우리 아이들의 건강을 해치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 건강하나 챙기지 못하면서 무슨 교육 백년대계를 세우니 마느니 하는지 모르겠다. 이것이 이 나라의 현주소라 생각하니 이 땅에 살기 싫다고 조국을 떠나는 이민자를 붙잡을 명분이 없다. 오늘도 이민 설명회장은 만원이다. 캐나다로, 미국으로, 유럽으로, 호주로.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발암물질, 환경호르몬 투성이다. 아이들은 피부가 약하다. 우리 아이가 중금속에 오염됐다고 해보자. 어린이 손을 고사리 손이라 하지 않는가. 그 여린 손으로 중금속을 가지고 놀고 있다 하자. 내 아이든 이웃 아이든 모두가 우리의 아이들이다. 위험한 것을 가지고 노는 아이를 보고 말리지 않으면, 그래서 그 아이가 다치거나 하면 그것은 범죄에 해당한다. 위험을 목도하고 그냥 지나치면 법적인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우리 모두 부작위에 의한 상해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위험물품을 만든 업체는 말할 것도 없고 국가와 이를 알고도 묵인한 어른도 어린이 상해죄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말로만 일벌백계이다. 기술표준원은 단속을 하고 이미 8개월 전에 개선명령을 내렸다 한다. 법으로 다스리지 않고 무엇으로 다스리려 하는가. 혹 뇌물이라도 오갔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봐줄 것을 봐줘야지 어린이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를 봐준대서야 말이 되는가.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에는 제2항에 ‘어린이는…, 질병의 예방과 치료를 받으며, 맑고 깨끗한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라는 규정에 이어 제8항에서는 ‘어린이는 해로운 사회 환경과 위험으로부터 먼저 보호되어야 한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끝항인 제11항에는 ‘어린이는 우리의 내일이며 소망이다. 나라의 앞날을 짊어질 한국인으로, 인류의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세계인으로 자라야 한다’라고 천명하고 있다. 헌장 명문을 무색하게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 일어나고 있다. 어린이를 볼 낯이 없는 어른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