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현린 칼럼

단 한 번의 시험

원기자 2012. 10. 3. 16:03

단 한 번의 시험
2008년 11월 12일 (수)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오늘은 대학입학을 위한 수학능력 시험일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행사이지만 올해도 예외 없이 이른 새벽부터 온 나라가 비상이다. 수험생들이 별 탈 없이 안전하게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연중 수학능력시험만큼 큰 행사는 없다. 이날만큼은 하늘을 나는 비행기도 비행 시간대를 변경한다. 국토를 종단하는 달리는 기차도 경적을 울리지 못한다. 관공서와 금융기관을 비롯 웬만한 직장들도 출근 시간을 늦춘다. 지하철과 버스도 증편 운행하고 소방본부도 119를 열어놓고 몸이 불편한 수험생이나 긴급을 요하는 수험생의 수송을 돕는다고 한다. 가히 국가적 행사이다.


가정마다 가족 중에 수험생이 없는 가정이 없을 정도이다. 자녀 아니면 손자손녀, 조카 중에 한 두 명은 수험생이다.


우리나라 부모들의 합격을 기원하는 정성은 가히 눈물겹다. 그동안 부모들도 함께 수험생이었다. 관절의 통증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절에 가서 108배를 올리며 온갖 정성을 다 기울여왔다.


수능이 수험생인 학생의 일생을 좌우한다고들 한다. 흔히 공부가 인생의 전부냐고들 하지만 수험생에게 적어도 오늘만큼은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긴장을 풀기 위해서 하는 스스로에 대한 위안의 말일 게다.


그렇다. 수험생이라면 일단 시험은 잘 보아야 한다. 하지만 이처럼 중차대한 시험인데도 기회는 단 한번 주어진다. 만약에 수험 당일 배탈이 난다거나 감기라도 걸려 건강상태가 좋지 않을 경우, 혹은 교통수단 등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하여 시험을 치르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사회는 복잡다기하다. 수험 당일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그동안 쌓아온 10년 공부가 도로무익(徒勞無益)된다면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없을 것이다.


한 젊은이의 평생을 좌우하는 일이다. 일생을 건 단 한 번의 시험보다는 두서너 번에 걸쳐 시험을 치르는 것도 괜찮을 성 싶다.


제도가 잘못됐으면 고쳐 나가야 한다. 해마다 문제점은 지적돼 오고 있으나 획기적인 개선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입시행정이다.


작년에는 수능 등급제가 시행되었다. 수능 등급제에 대한 불만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어떠한 과목에서는 거의 10점 정도 차이인데도 같은 등급이 나오는 과목도 생겨났다. 무엇보다 변별력이 필요한 이과 학생들의 수학 문제가 쉽게 출제되어 수리-가형에서는 3점짜리 한문제만 틀린 학생이 2등급의 점수를 받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피해를 본 학생들이 많았던 만큼 이번 시험에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이렇게 달려온 수능도 오늘 저녁이면 끝난다. 우리 수험생들은 아직은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들이다. 스스로를 제어하기엔 젊은 혈기들이다. 가정에서의 격려와 위무가 필요하다.


유흥업소들이 기다리고 있다. 긴장이 풀린 탓에 마음이 해이해지기 쉽다. 교육당국도 이를 십분 감안, 제도권 교육에서 벗어나는 이들을 위해 별도의 프로그램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공부는 국어, 영어, 수학, 과학 등 학과 공부만이 공부가 아니다. 그저 학교에만 묶어 놓는다고 교사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종전과 다른 학습 일정이 필요하다.


오늘 시험을 마친 수험생들은 갈 곳이 마땅치 않을 것이다. 학교 당국에서도 별다른 일정을 마련하지 않고 그저 한시름 놓았으니 푹 쉬라는 말밖에 안할 것이다. 수험생에게는 어떠한 말도 들리지 않는다. 그동안 수험생이라는 이유로 못다한 가족 간의 대화도 필요하다. 오늘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들에게 격려와 박수를 보내고 차분히 결과를 기다리자.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로 가족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