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현린 칼럼

사라진 광풍제월(光風霽月

원기자 2012. 10. 3. 16:10

사라진 광풍제월(光風霽月)
2008년 12월 24일 (수)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마지막 잎새처럼 매달린 한 장의 달력마저 떨어지려 하고 있다. 무자년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는 것이다.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해야 하는 연말이다.


예전 같으면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캐롤송이 울려 퍼지는 등 연말 분위기가 한껏 부풀어 올랐을 텐데 올해는 그렇지가 않다. 그렇게 한들 계속되는 경기불황 속에서 어울리지도 않을 게다.


명년에는 좀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을 지니고 사는 시민들이다. 그렇게들 확신하고 있다. 시민들의 이러한 소박한 믿음에 실망을 주어서는 안 되겠다.


내년은 열두 띠 중 소의 해이다. 소는 일꾼을 상징한다. 소를 우공(牛公)이라 하여 공(公)자를 붙여 높이기까지 한다. 논밭을 갈아 주인의 농사일을 돕고 죽어서는 고기를 제공한다. 가죽까지 남겨 준다. 어느 것 하나 남기지 않고 주인에게 몽땅 바친다. 이를 높이 사기에 여기서 붙여진 경칭이다. 느리지만 꾸준히 일하는 모습이 성스럽기까지 하다. 경제가 어렵다. 지금이야말로 우공의 자세로 묵묵히 나아가야 할 때다.


새해에는 자동차 공장 등 멈춰선 사업장들이 재가동되어야 하겠다. 인천항을 드나들던 수출선박들도 뱃고동 소리를 멈춘 지 오래다. 이들 선박도 오대양 육대주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야 하겠다. 싸움만 일삼는 국회도 국민의 대표기관답게 정쟁은 접고 일하는 국회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만약에 내년에도 이것들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역사 속에서 영원히 낙오될 것이다. 누차 강조하지만 힘이 없는 민족은 지구상에서 가차 없이 사라져 갔다. 다시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하겠다.


나면서부터 안다는 생이지지(生而知之)와 배워야 안다는 학이지지(學而知之)는 못 된다고 치자. 고생하고 또 고생해야 비로소 안다는 곤이지지(困而知之)는 돼야 할 것 아닌가. 그래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다. 다시 뛰는 기축년 한해가 되어야 하겠다.


우리는 지금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것이 없다. 세계의 어느 경제학자도 오늘의 경제상황을 점치지 못했다고 한다. 신문과 방송에 연일 기고하고 출연하여 마치 경제를 꿰뚫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던 그 많은 경제학자는 다 어디로 갔는가. 펀드가입을 권하던 그 숱한 금융인들은 왜 말이 없는가.


해마다 이 맘 때면 대학교수들이 선정하는 올해의 사자성어가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전과 같이 달갑지 않은 의미인 ‘호질기의(護疾忌醫)’가 뽑혔다. 병이 있는데도 의사한테 보여 치료받기를 꺼린다는 뜻이다.


참으로 안타깝다. 연초에 올 희망의 사자성어로 선정된 ‘광풍제월(光風霽月) ; 비가 그친 후 맑게 부는 바람과 하늘에 뜬 밝은 달, 즉 마음이 상쾌하고 거리낌 없는 인품, 잘 다스려진 세상’은 어디로 갔나.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당시 신년 휘호이자 행사 주제였던 ‘시화연풍(時和年豊) ; 나라가 태평하고 풍년이 든다’는 또 어디로 사라졌나.


우리는 늘 연초에 떠올린 희망의 사자성어를 잃어버리곤 했다. 금후로는 ‘함포고복(含哺鼓腹 );먹을것이 풍부하여 즐겁게 지냄’이라든가 ‘강구연월(康衢煙月) ; 태평한 세상의 평화로운 풍경’, ‘태평연월(太平烟月) ; 세상이 평화롭고 안락한 시절’ 등의 문구가 올해의 한자성어로 선정됐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 각자 각자가 자신부터 새로워져야 한다. 제자리 걸음을 한다거나 퇴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간 위에는 새로운 역사가 쓰여야 한다.


12월은 감사의 달이기도 하다. 한 해 동안 고마웠던 사람들을 만나거나 연하장을 띄워 인사하는 달이다. 그동안 이런 저런 이유로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이렇게 조용히 한해를 정리하고 새롭게 다가오는 내년을 기획하는 연말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