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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는 깨지지 않는다, 단지 구겨질 뿐’

원기자 2024. 10. 17. 10:16

'종이는 깨지지 않는다, 단지 구겨질 뿐’

 

=경기저널 가을호 권두언=

[종이는 깨지지 않는다, 단지 구겨질 뿐’ 디지털 시대, 존속위한 특화 제작 필요해]/원현린 기호일보 주필

신문(新聞·Newspaper)은 사회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한 사실들을 신속 정확하게 널리 전달하기 위한 정기 간행물을 말한다. 근자 들어 인터넷 신문의 발달로 장기간 뉴스 전달 역할을 해 오던 종이신문(신문)이 존폐를 논할 때가 됐다고들 한다.

디지털시대를 맞아 신문의 탄생에서부터 미래, 그리고 앞날의 운명을 약술(略述)해 본다.

로마제국은 제국의 국정 상황을 판자나 석재에 새겨 공고했다. 또한 유명인이 재판을 받거나 처형되는 등 정치·사회적으로 큰 사건이 발생하면 각종 소식과 함께 광장, 동네 목욕탕 등에 마련된 게시판에 적어 공고했다. 이것이 바로 신문의 효시(嚆矢), 원조(元祖) 등으로 불리는 ‘악타 디우르나(Acta Diurna)’다.

이집트인들은 수생식물인 파피루스(Papyrus)를 8∼9세기 다른 종이가 발명되기 전까지 책이나 공문서를 만드는 데 사용했다. 12세기 종이

가 일반화되기 전까지도 간간이 쓰인 것으로 전해진다. 파피루스는 현재 종이를 뜻하는 영단어 ‘Paper’의 어원이 되었다. 동양에서는 고대 중

국에서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 죽간(竹簡)이라 불리는 대나무 조각에 글자를 적었다. 마찬가지로 종이가 나오기 전까지 사용되었다. 이후 종이

가 발명되자 인류의 생활상은 상세히 기록되어 오늘날 우리가 지나간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한 쪽짜리 신문은 8세기경 중국이 효시라 한다. 종이신문은 15세기 구텐베르그(Gutenberg)의 금속활자 발명으로 독일의 각 도시에 배포돼 본격 신문시대를 예고했다. 이때부터 출판의 대중화가 이루어져 근대적 의미의 미디어 시대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그 후 신문은 17세기에 이르러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 유럽 제국에서 정기 간행물 형태로 자리 잡아 유럽 소식과 함께 아메리카와 중국의 정세도 왕왕 실렸다.

이러한 역사를 지닌 신문이 오늘날까지 발전을 거듭하면서 정보전달의 중심 매개체로서 역할을 다해오고 있다. 우리의 경우 주지하는 바와 같이 최초의 근대 신문은 1883년 10월 31일 창간된 ‘한성순보(漢城旬報)’다. 1896년 4월 7일 한국 최초의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이 창간되었다. 이 신문은 한글 전용과 띄어쓰기로 제작됐고, 사실 보도와 논평 등을 실었다. 특히 영문판은 국내 사정을 해외에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더하여 일제의 침략을 규탄하는 등 항일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이후로도 신문은 속속 창간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통신 과학의 발달은 신문 산업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라디오가 발명되고 TV까지 출현하자 신문의 운명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필자는 신입기자 시절 한 컴퓨터공학 교수로부터 종이신문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강의를 들었던 기억도 있다.

여하튼 최근의 인터넷 발달로 인하여 신문이 위기에 봉착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전통적인 신문의 구독률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신문의 장점을 살린 특화 제작만이 살길이다. 컴퓨터 신기술은 급격히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미디어 환경이 오랫동안의 오프라인 중심에서 온라인으로 변하면서 신문이 생존의 위험까지 느끼고 있는 것이다. 유례없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신문사들은 이제 감면 발행, 나아가 아예 종이신문을 접느니 마느니 하고 고심 중에 있다고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종이신문의 종언’을 고할 날이 머지않았다고까지 표현들을 한다.

기록이 있어야 역사다. 때문에 문자로 쓰인 기록이나 문헌이 없던 시대를 우리는 역사(歷史) 이전을 의미하는 선사시대(先史時代)라 칭한다. 인터넷상에 남는 것도 기록이긴 하다. 하지만 종이신문과 종이책자는 다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곧 ‘인쇄 역사’라는 말도 있다. 한 언론에 게재됐던 종이책자의 운명과 관련한 기사 한 부분을 전재해 본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장서각(藏書閣) 2층 난간,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가 아래층 바닥으로 자신의 소설책 ‘장미의 이름’과 전자책

용 기기 ‘킨들(Kindle)’을 힘껏 집어 던졌다. 쾅 소리와 함께 킨들은 산산조각이 났지만 종이책은 조금 구겨졌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래 최고의 르네상스적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 세기적 석학(碩學)은 종이책의 불멸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 있는 중이었다."

‘종이신문, 종이책’ 옹호론자들이 던지는 말은 많다. "신문은 종이신문, 책은 종이책으로 읽어야 제맛이지…!"가 그 한 예다.

그렇다, 종이는 깨지지 않는다. 단지 구겨질 뿐이다.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폭염일수가 가장 길었던 지난 여름이었다. ‘경기저널’ 가을호가 발행됐다. 가을 달은 그 밝음을 드날린다(秋月揚明輝) 했다. 역사의 기록자로서 언론인들도 가을 달빛 아래 필봉을 드날릴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