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밥맛이 달고 잠자리 편할 수 있겠는가/2026.08.12

역대급 무더위에 산천초목마저 타들어 가고 있다. 지나간 어느 해보다 힘겹게 여름을 나고 있는 시민들이다. 더위를 이기지 못해 하루에도 수십 명에 달하는 온열질환자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건설현장 등 산업현장 근로자들의 노고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옛 사람들도 여름 나기는 버거웠다. 조선조 명군으로 일컬어지는 정조(正祖)는 화성(華城) 축성 공사 현장의 일꾼들이 한여름 더위로 고생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함께 고통을 나누었다. 밥맛이 없고 제대로 잠도 못 이뤘다한다.
정조는 더위를 씻어주는 데 효험이 있고 기력을 회복시켜 준다는 환약 척서단(滌暑丹) 4천 정(錠)을 화성 축조 현장에 내려주고 전교(傳敎)를 내렸다. “불볕더위가 이 같은데 성역처(城役處)에서 공역을 감독하고 공역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골골대고 헐떡거리는 모습(矻矻喘喘之狀)을 생각하니 밤낮으로 떠오르는 일념을 잠시도 놓을 수 없다. 이러한데 어떻게 밥맛이 달고 잠자리가 편할 수 있겠는가?(而食豈甘 寢豈便乎). 그러나 이처럼 생각한다고 해서 속이 타는 자의 가슴을 축여 주고 더위 먹은 자의 열을 식혀 주는 데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별도로 한 처방을 연구해 내어 새로 조제해 내려 보내니 장수(匠手)·모군(募軍) 등에게 나눠 주어 속이 타거나 더위를 먹은 증세에 1정 또는 반정을 정화수에 타서 마시도록 하라. 이 밖의 구료할 처방도 각별히 유의해 궁궐에서의 염려를 덜어 주도록 하라”고 영을 내렸다. -조선왕조실록. 정조 18년 6월 28일-
정조는 또 축성 공사에 참여한 장인들에게 품삯을 지불하라 명하고 날씨가 무더워지자 죄가 가벼운 죄수들을 석방하기도 했다(苦熱, 釋輕囚).
이 얼마나 영명(英明)한 군주의 치세(治世)인가. 가히 애민(愛民) 정신의 표상(表象)이라 할 만하다. 명군지도(明君之道)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어려움을 긍휼(矜恤)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진정한 나라의 지도자라 하겠다.
정부는 지난 8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중심으로 농림축산식품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등 관계 부처에 사고수습지원본부 등 비상대응기구를 설치, 분야별로 철저한 대응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상당수에 이르는 온열질환 사상자가 발생한 후 나온 비상기구 출범이다. 때 늦은 대응책 가동 소식에 허탈할 뿐이다. 고사한 묘목에 물주기와 다름없다. 척서단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정쟁(政爭)의 소음이 가뜩이나 더위에 지친 시민들의 마음에 불길을 더하고 있다.
오늘도 남부지방에서는 가뭄으로 강과 저수지가 말라 농심(農心)이 타들어 간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린다. 지금은 들녘의 곡식이 한창 자라야 할 시기다. 그래야 풍성한 가을 수확을 기대할 수 있다. 애타는 농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는 논밭 옆에서 물 축제를 즐긴 지자체도 있다하니 말문이 막힌다.
여름이 지나 가을로 접어든다는 입추(立秋)도 지났다. 기상청은 119년 만에 가장 더운 입추라고 기록했다. 가을 추(秋)자가 무색한 늦더위가 지속되고 있다. 오는 14일은 극성을 부리던 더위도 누그러지기 시작한다는 말복(末伏)이다. 말복이 지나면 가을 절기 처서(處暑), 백로(白露)가 기다리고 있다.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칠월령에서 시원한 가을바람을 앞서 느껴본다. “칠월이라 맹추(孟秋)되니 입추 처서 절기로다/ 화성(火星)은 서류(西流)하고 미성(尾星)은 중천(中天)이라/ 늦더위 있다 한들 절서(節序)야 속일소냐/ 빗줄기 가늘어지고 바람 끝도 다르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