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현린 칼럼

지식인과 항산항심(恒産恒心)

원기자 2013. 10. 28. 15:15

 <원현린 기호일보 편집국장> *사진첨부
최근 한 법조인이 공직을 물러난 후 거취문제를 놓고 던진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이라는 한마디가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그가 바로 대법관과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지낸 김능환 변호사다.
그는 평소 검소하기로 이름난 법조인인데다가 보기 드문 선비스타일이다. 재산도 공직 경력에 비해 그다지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세인들은 오랜만에 보는 청백리 상(像)에 존경과 찬사를 보냈다.
게다가 퇴직 후에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아내가 운영하고 있는 편의점 일을 함께하며 살아가겠노라고 인생후반기 일정을 밝힌바 있다.
하지만 근자들어 “무항산이면 무항심”이라는 맹자의 말을 인용, 5개월이라는 길지 않은 칩거(?) 생활을 마치고 법조인으로서 변호사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 로펌 행을 택해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다.
‘항산항심(恒産恒心)’이라는 사자성어가 나온 원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왕이 맹자에게 치국(治國)의 가르침을 청했다. 맹자는 “백성들이 배부르게 먹고 따뜻하게 지내면 왕도의 길은 자연히 열리게 된다. 경제적으로 생활이 안정되지 않아도 항상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뜻있는 선비만 가능한 일이다. 일반 백성은 경제적 안정이 없으면 항상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다. 항상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다면 방탕하고 편벽되며 부정하고 허황되어 이미 어찌할 수가 없게 된다. 백성들이 죄를 범한 후에 법으로 그들을 처벌한다는 것은 곧 백성을 그물질하는 것과 같다(無恒産而有恒心者 唯士爲能 若民則無恒産 因無恒心 苟無恒心 放僻邪侈 無不爲已 及陷於罪然後 從而刑之 是罔民也)”라고 답했다.
예부터 우리는 ‘民以食爲天’이라 하여, 백성들에게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먹고 사는 것이라 했다.
‘금강산도 식후경’, ‘곳간에서 인심난다’. ‘사흘 굶어 도둑 안 되는 사람 없다’ 는 등의 속담도 있다.
그렇다. ‘의식이 족해야 예절을 안다’라는 말은 맞는 듯하다.
만족과 불만족은 비교에서 시작된다. 초당(初唐)의 시인 왕범지(王梵志)의 시가 있다. ‘저 사람은 멎진 말을 타는데, 나만 나귀에 앉아 있네. 땔나무 짐꾼 돌아보니, 마음이 조금 좋아지네(他人騎大馬, 我獨跨驢子. 回顧擔柴漢, 心下較些子)’
신선한 화제를 뿌리며 청렴법관 소리를 듣던 인사다. 하지만 초심과는 달리 큰 수입이 보장되는 로펌 행을 선언하자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 간에는 반응이 갈리고 있다.
‘내 그럴 줄 알았다’라던가, ‘해박한 법률지식을 사회를 위해 써야한다’라는 등 엇갈리는 네티즌들의 반응이 그것이다.
대개 어느 나라에서나 변호사는 비교적 수입이 괜찮은 직업으로 통한다. 영국속담에 ‘조개 입은 칼로 열고 변호사 입은 돈으로 연다.’는 말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변호사는 빵을 위해 산다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문제가 모 대학교 로스쿨 시험에 출제되기도 했다.
화려한 법조 경력과 오랜 시간의 인생경험을 살리는 것이 사회에 도움이 되리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모두가 고수익이 보장되는 변호사의 길을 택하는 풍토에서 유독 초야에 묻히겠다고 했던 인사이기에 더욱 신선한 충격으로 와 닿았던 것이다.
자타가 부러워하는 대법관이라는 화려한 고위직 법관 경력과, 집에서 그래도 가계라도 꾸려나가니 그다지 궁핍한 생활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세평이다. ‘무항산이면 무항심’이라는 말을 할 정도의 생활은 아니었으리라는 말이다.
한 나라의 대법관을 지냈으면 법률가를 넘어 모든 면에서 학식과 덕망을 갖춘 추앙받는 당대의 큰 인물에 속한다. 일거수일투족과 언행에 있어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
‘항산항심’이라는 한 마디 문구를 던져놓고 하루아침에 삶의 철학을 바꾸는 한 원로 법조인의 몸가짐에서 씁쓸함이 느껴진다.
증자 말하기를 “선비는 반드시 마음이 너그럽고 꿋꿋해야 한다. 임무가 무겁고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仁을 임무로 삼고 있으니 무겁지 않겠는가. 죽어서야 비로소 가던 길을 멈추게 되니 길이 멀지 아니한가(士不可已 不弘毅 任重已道遠 仁以爲已 任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 라고 했다.
지식인은, 선비는 발걸음이 무거워야 한다. 백범 김구선생의 애송시로 잘 알려진 서산대사의 ‘야설(夜雪)’이 떠오른다. ‘눈 내린 들판을 밟아갈 때에는, 모름지기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말라.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반드시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필자가 한 칼럼에서 인용한 적이 있지만 우리나라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는 “법관은 비록 굶어 죽을지언정 절대로 부정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이는 법관 뿐 아니라 검사, 변호사 등 전 법조인들에게 당부한 일침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평소 두루마기에 고무신을 애용한 그는 법조인들에게 청렴한 자세와 가지런한 몸가짐을 가르치곤 해 왔다. 미국의 저명한 변호사이자 정치가였던 다니엘 웹스터는 “최선의 법률가는 바르게 살고 부지런히 일하고 가난하게 죽는다.”라고 했다. 이 말이 우리에게도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어차피 택한 변호사의 길이라면 법관당시 입고 느꼈을 법복의 무게를 잊지 말고 법조인으로서 가야할 길, ‘정도(正道)’를 걷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