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현린 칼럼

국정에는 연습이 없다

원기자 2012. 10. 2. 10:24

국정에는 연습이 없다
2006년 11월 15일 (수)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외국인의 눈에는 한국이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또 후세(後世) 사가(史家)들은 지금 이 시대의 역사를 어떻게 기록할까.

역사에 어떻게 쓰여 지든 오늘 한 순간만 살면 되는 것인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마치 내일이 없는 사람들처럼 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워하는 말이다. 역사가 바라보고 있다. 부끄럽고 두렵기까지 하다.

의식주(衣食住)라 했다. 온 나라가 국민들이 들어가 살집 문제로 떠들썩하다. 가장 기본적인 집 문제 하나를 해결치 못하고 무슨 정치를 한다는 말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 했다. 인사에 이르러서는 더욱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부득불(不得不) 그 자리에 앉히려는 인사권자와 사양치 않는 피인사권자를 보고 있노라면 안쓰러움 마저 느낀다.

굳이 관철시키려는 이도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경우 역대 고관대작(高官大爵)들 중에 벼슬자리를 사양한 이가 그 몇 명이나 있었던가.

학계(學界)를 버리고 부르기가 무섭게 달려가곤 하는 벼슬길이다.

왕으로부터 조정(朝廷)에 나오라는 말을 듣고 귀를 씻은 중국의 허유(許由), 왕이 소원을 물었더니 햇빛을 가리지 말라고 한 희랍의 디오게네스다.

한번쯤은 사양하든가 아니면 나아가 감당할 수 있는지 좀 재어보고 출사(出仕)하는 모습이 아쉽다.

법치주의 하에서 법이 지켜지지 않으면 그 나라는 이미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무정부(無政府) 상태이거나 군주(君主)가 다스리는 절대국가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헌법재판소장 자리를 놓고 여야 정치권이 다투는 모습 또한 가관(可觀)이다.

국가의 장차관급 고위공직자들이 집을 사라. 사지마라 해서 국민을 혼란에 빠뜨려놓고 버티고 있는 이 나라다.

인재는 얼마든지 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국정(國政)에는 연습이 없다. 국가정책은 한번 실패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된다.

과거 왕조시대에도 나라에 흉년이 들어 기근(饑饉)이 닥치면 ‘ 과인(寡人) 이 부덕(不德)한 탓이다’ 하고 왕위(王位)까지 물러난다 하였다.

장관 누구 하나 책임질 줄 모른다. 경질은커녕 인책(引責)조차 안한다. 한다 해도 이번처럼 시기를 놓친다.

이러니 국민이 어떻게 정부를 믿겠는가. 당사자는 물러나지도 않고 인사권자는 경질을 하네 마네 하는 모양 또한 풍자만화의 소재거리로 안성맞춤이다. 어차피 물러날 것을 좀 버티다 물러나면 나은가.

한국은 이제 더 이상 파란 눈에 비친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이거나 ‘은자의 나라 한국’이 아니다. 서구 열강이 밀려들던 근세 서세동점기(西勢東漸期)와 돌아가는 형국이 다를 바 없다.

정신 차리고 나라를 지켜내야 한다. 어느 때보다 깨어 있음을 요구하는 때이다.

복잡다기(複雜多岐)한 세상이다. 경제 문제에 이르러서는 전문가들조차도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고들 한다.

모든 것이 예측불허(豫測不許)이다. 이렇듯 전문가를 앉혀놓아도 시원치 않은 판에 정실인사로 학연, 혈연, 지연을 찾아 앉혀 놓으니 잘 될 턱이 없다.

인사 때마다 잡음이 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뭘 알아야 얽힌 난마(亂麻)를 풀고 정책을 입안(立案), 시행하고 접고 할 것이 아닌가.

잘못되면 고작 하는 말이 홍보부족이라느니 없었던 것으로 하자 느니 하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집값 폭등과 부동산정책 실패도 따지고 보면 잘못된 인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능력 있는 인재를 적재적소(適材適所)에 배치하는 것이 인사이다.

세자(世子) 책봉(冊封)을 극구 반대 했던 황희정승이다. 그 능력을 높이 사 왕이 된 후 중용(重用)했던 세종(世宗)이다.

중국의 진왕(秦王)도 외국인 빈객(賓客)을 축출하려다 태산불양토양 고능성기대(泰山不壤土壤 故能成其大) 하해불택세류 고능취기심(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큰 산은 흙덩이를 사양치 아니한 까닭으로 능히 그 크기를 이루었고, 강과 바다는 작은 냇물을 가리지 않았기에 능히 그 깊이에 도달하였다.- 라는 뜻이 담긴 간축객서(諫逐客書) 한 장에 자신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이방인(異邦人) 이사(李斯)를 중용(重用)하여 대업을 이루었다.

이를 두고 누가 정실(情實)인사니 코드인사니 하고 왈가왈부(曰可曰否)하겠는가.

우리에겐 널리 인재를 등용하던 조선조의 탕평책(蕩平策)이 있었다.

무편무당(無偏無黨) 왕도탕탕(王道蕩蕩) 무당무편(無黨無偏) 왕도평평(王道平平) -치우치거나 무리짓지 않으면 왕도가 넓어지고, 무리짓거나 치우치지 않으면 왕도가 공평해진다.- 서경(書經)에 있는 말이다.

어디 이뿐인가. 우리에겐 임현능(任賢能)이 있었다. 율곡 이이는 선조에게 올린 글에서 성품이 어질고 능력 있는 사람을 임용해 쓰라하고 이를 으뜸으로 삼았다.

마침 오늘이 수능일이다. 혹 시험문제에 헌법재판소장의 임명절차와 헌법상의 지위를 묻는 문제라도 나오면 수험생들은 무엇을 답으로 해야 할까. 역사에서 인사를 배우라.

'원현린 칼럼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합집산의 계절  (0) 2012.10.02
무겁고 또한 멀지 아니한가!  (0) 2012.10.02
모든일은 기본에서 시작된다  (0) 2012.10.02
녹명(鹿鳴) - 사슴이 우네  (0) 2012.10.02
가벼운 자 방아에서 내려라  (0) 2012.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