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현린 칼럼

이합집산의 계절

원기자 2012. 10. 2. 10:27

이합집산(離合集散)의 계절
2006년 12월 13일 (수)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정치인에게는 정년이 없는가. 낙향하여 회고록을 쓰고 있는 줄 알았던 전직 대통령들과 대선 후보였던 인사들이 회동을 갖거나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 건재함을 과시했다.

정계복귀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이분들은 하나같이 “나라가 어지러운데 국가원로로서 어떻게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있느냐”면서 한마디씩 고언을 했다.

현직 대통령을 지칭하며 정신이 어떻고 하며 걱정까지 했다.

순수하게 건강걱정을 했다면 이보다 더 어른스러운 것은 없을 것이다.

현직 대통령에게 충고도 아니고 격려도 아닌 비난 일변도의 말을 쏟아 부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정치9단들의 이러한 모습에서 이 나라 정치의 현주소를 본다.

이를 언제까지 지켜보아야 하는 국민들은 허탈하고 씁쓸하기만 하다.

나라가 걱정이 돼 한마디 할 바에는 국가 원로답게 ‘한국 국민에게 고함’ 정도의 우국충정 넘치는 강의나 담화발표가 더 나았을성싶다.

이렇듯 전직 대통령들까지 나서는 걸 보니 또다시 때가 되었나 보다. 이합집산(離合集散)의 계절이 온 것이다.

바야흐로 또 다시 줄잡기 게임이 시작됐다. 이 게임에서는 의리도 우정도 만남의 인연도 없다.

오로지 이익만을 쫓을 따름이다. 정치인들은 요즘 너나할 것 없이 나름대로의 계산기 두드리기가 한창이다.

탈당을 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한다면 시기는 언제가 좋은가. 정당은 어느 당을 택할 것인가. 고민이 아닐 수 없을게다.

어느 줄이 새 동아줄이고 어느 줄이 삭은 동아줄인가를 잘 가려잡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낭패다. 한번 잘못 잡았다가는 큰일이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정치인은 아니다. 정치인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들에게 있어 나에게 이롭지 않으면 모두가 한낱 초개(草芥)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선거 때만 되면 이리 몰리고 저리 휩쓸리고 갈피를 못 잡아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재연되곤 한다.

이들 세계에서는 “나는 세상을 배반할 수 있어도 세상은 나를 배반하면 안 된다”는 조조의 논리만이 통한다.

게다가 만남 또한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기도 하고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된다.

오직 잣대는 이해득실(利害得失)이다.

맹자의 혹평대로 “내 다리에 난 털 하나를 뽑아 천하를 이롭게 한다 해도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한 중국의 양주(楊朱)야말로 이(利)를 따지자 보면 단연 압권(壓卷)이다.

소인은 이(利)를 택하여 사귀고 군자는 의(義)를 쫓아 사귄다.

나라가 어지러운 것도 정치인들이 의를 버리고 목전의 작은 이익만을 탐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양보를 미덕으로 삼아왔다.

3인이 먹으면 부족하고 100인이 먹으면 남는 떡이 있다.

이 말은 다투면 부족하고 서로 사양하면 남는다는 말이다. 자리는 한정돼 있는데 서로 다툰다.

한때 이익이 맞아 떨어져 호형호제(呼兄呼弟)하며 지내다가 이익이 없어지자 가차 없이 버리고 마는 정치인들이다.

정치학자 누군가가 말했다. 정치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결코 장밋빛이 아니라고,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 아예 희망조차 갖지 말라고.

정치인의 눈에는 애초에 국민은 없는지도 모른다. 집권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한다. 그렇지만 국민을 위해서는 하지 않는다. 국민을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집권을 위해서 가리지 않는다.

나에게 이롭지 않다고 버리고 헤어지면 주위에 몇이나 남을 것인가. 맹구우목(盲龜遇木)이라는 눈먼 거북이 이야기가 있다.

큰 바다 깊은 곳에 사는 눈이 먼 거북이가 100년에 한 번씩 숨을 쉬기 위해 물위로 올라온다. 마침 거북이가 넓고 넓은 바다를 떠다니던 구멍 뚫린 나무판자를 만나 그 위에 올라앉게 되었다.

이 거북이는 몇날 며칠이고 바깥세상을 구경할 수 있다. 나무판자를 만나지 못한 거북이는 잠시 하늘 한번 쳐다보고 바다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다시 하늘을 보려면 100년을 기다려야 한다. 넓은 대양에서 눈먼 거북이가 나무토막을 만날 정도의 아주 적은 확률로 만난 것이 사람의 인연이다.

진정한 우정과 사랑은 쓴 것을 함께 먹고 자란다는 말은 옳다. 세모다 망년회다 해서 모임이 잦다.

연말 회식자리에서만이라도 정치이야기는 접어보자. 그리고 한번쯤은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의 ‘인연’을 떠올려보자. 한 사람 한 사람 나와 기막힌 인연이 아닌 사람이 없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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