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벌판을 걸어가는 자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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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지인들과 수도권의 한 산에 올랐다. 산야는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있어 설국을 방불케 했다. 들판을 지날 때 누군가 어지러이 앞서간 이가 있었다. 발자국이 똑바로 일렬로 나있질 않고 이리저리 길을 내고 있었다. 한참을 걸었다. 앞서 가던 이가 필자에게 양보했다. 아무도 밟지 않은 길이니 앞서보라는 뜻에서다. 기분은 좋았지만 순간 서산대사의 야설(野雪)이란 시구가 떠올랐다.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불수호란행(不須胡亂行).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눈 덮인 벌판을 걸을 때에는 이리저리 함부로 걸어서는 안 된다. 오늘 내가 밟고 간 발자국이 뒤에 오는 이들의 이정표가 되리니.- 곧 마음을 경건히 하고 똑바로 걸어갔다. 대사의 이 시구는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형국을 마치 예견이라도 하듯이 살아남아 우리들에게 경구로 들려오고 있다. 김구 선생이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하여 더욱 인구에 회자되는 글이다. 지도자야말로 올바른 길로 국민을 인도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지도자의 덕목은 여기서 일일이 열거하지 않겠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경우 대륙군 총사령관 시절 보수를 받지 않았고, 펜실베니아의 주지사를 지낸 벤자민 프랭클린의 경우도 주지사 시절 봉급을 모두 자선사업에 송두리째 기부 했다. ‘프랭클린 스토브’와 ‘피뢰침’을 발명한 프랭클린은 이에 대한 특허 권리금도 받지 않았다. 이유는 이것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보다 싼값으로 구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지금도 미국 시민들로부터 ‘보수를 희생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임기가 끝난 대통령들은 재산 추적을 당하기가 일쑤이고 참모들은 감옥 가는 일이 상례화 되어있다시피 하질 않은가. 지금은 어떤가. 진실여부를 떠나 현직 대법원장이 탈세 의혹을 받는가하면 그 어느 곳 보다 맑아야 할 법조계조차 금품수수설이 끊이질 않고 있다. 금융기관을 감독하여야할 금융감독원 간부들도 ‘금고 로비’ 연루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국회의원, 지방의원, 자치단체장 등 국민이 선출한 선거직 인사들도 금품 수수혐의가 입증돼 신분을 상실하는 이가 한둘이 아니다. 분야, 직종,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하루가 멀다시피 터져 나오는 각종 비리소식들이다. “법관은 의심받는 것만으로도 법관으로서는 명예손상이다.”라고 후배 법관들에게 강조해온 가인(街人)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퇴임사가 부쩍 생각난다. “모든 사법 종사자는 굶어 죽는 것을 영광이라 생각하라. 그것이 부정을 저지르는 것보다는 명예롭기 때문이다.” 어른이 없는 나라인가. 전직 대통령들이 여럿 있으나 존경과 추앙을 한 몸에 받는 이는 없는 것이 우리나라가 아닌가한다. 학식과 덕망을 갖추었다는 대학교수들 또한 제자들의 논문 표절시비로 시시비비를 가리느라 체통이고 뭐고 다 잃은 지 오래다. 게다가 한국은 지금 어저께 노무현 대통령의 갑작스런 ‘대통령 4년 연임 개헌’ 제안으로 정국이 또 다시 소용돌이 치고 있다. 작금의 경험에 의하면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서 ‘집권과 치부’욕망 외에는 아무것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성 싶다. 이들에게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배의 선장을 맡겨야 하는 것이 우리 국민의 불운이라면 불운이다. 겉으로는 모두가 다 국민과 나라를 위하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정치인들이 말하는 ‘국민’은 일반 개개인 국민의 의사와는 별개의 의미이다. 그들이 말하는 의미의 ‘국민’은 실존하지 않는 국민이다. 국민의 뜻을 잘못 이해하고 그냥 인용하는 것일 게다. 요즘 연말 대선을 앞두고 각 진영의 후보들은 저마다의 연설문 속에 ‘국민을 위하여’ 혹은 ‘나라를 위하여’라는 문구가 빠지지 않는다. 연설 원고대로라면 하나같이 모두가 만고의 충신이고 애국자들이다. 우리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지키고 실천해야하는 수준 높은 이들의 책무를 ‘노블리스 오블리제’라 하여 이의 실행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수년의 각고 끝에 ‘로마인 이야기’ 연작 15권을 완간한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가 위대한 것은 지도층들의 이 고귀한 의무의 실천정신에 있다고 보고 있다. 로마의 한 집정관은 군 총사령관이 되자 자신의 두 아들과 사위부터 차출, 전장에 내보냈다. 로마에 있어 ‘사관학교’는 곧 실전이 벌어지는 전쟁터라고 작가는 적고 있다. 이렇듯 로마 귀족들은 자기 자식을 주저 없이 전쟁에 내 보냈다. 뿐만 아니라 몸소 ‘나를 따르라’하여 앞장서 전장에 나가 죽음으로써 이 의무를 실천했다. 그래서 ‘로마는 위대하다’라고 한다. 로마제국은 멸망했으나 여전히 로마는 문자와 법률, 문화를 통해 지금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역사가들은 평하고 있다. 앞서가는 자들이 진정한 지도자라면 눈 덮인 벌판을 함부로 걸어가선 안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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