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은 잔인한 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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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시즌이다. 자녀들이 졸업을 하고 입학을 하는데 축하를 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 나라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입학을 해도 그다지 기쁘지 않고 졸업을 해도 홀가분하지가 않다. 이 무슨 말인가. ‘교복 한 벌에 70만원’, ‘한해 등록금 천만원대’, ‘학부모 허리가 휜다.’ ‘사원모집 수백대 일’ 요즘 일간지 사회면의 제목들이다. 한 은행 창구, 모녀가 학자금을 대출 받기 위해 은행 직원과 상담 중이었다. 딸은 근심어린 눈빛으로 어머니를 바라보며 ‘엄마 미안해’하고 있었고 엄마는 ‘공부나 열심히 해라’ 하며 자식의 등을 또닥이고 있었다. 이번에 대학에 입학한 자식의 등록금을 마련하며 나누는 두 모녀의 이야기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학생이 있는 서민 가정이면 이와 똑 같은 대화가 오고 갔으리라.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등록금 액수가 만만치 않다. 해마다 등록 시기만 되면 대학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등록금을 인상한다. 한해 대학생 학비가 웬만한 중소기업 신입사원의 연봉에 해당하는 높은 액수이다. 고액의 등록금으로 학부모들은 허리가 휜다. 게다가 얼마 안 있으면 설날이기도 하다. 명절을 지내야하는 서민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가계를 꾸려나가기가 벅차다. 명절 돌아오는 것이 겁이 난단다. 차라리 2월이 없었으면 하고들 바란다. 어저께 생활이 곤궁한 한 친구가 필자에게 걱정을 털어놨다. 아들이 대학에 합격을 했는데 등록금이 비싸 걱정이라는 것이다. 자식도 집안의 생활 형편을 아는 지라 합격한 것이 죄스럽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대학에 합격하고도 걱정부터 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다. 학자금 대출을 받아 대학을 다니다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는 예가 허다하다한다. 며칠 전 보도를 통해 그 숫자가 알려지면서 우리를 서글프게 하고 있다. 졸업도 하기 전에, 사회에 나가기도 전에 신용을 잃어 직장도 구하지 못한다니 이 또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쯤 되니 한국은 공부를 하려해도 할 수 없고 공부를 시키고 싶어도 시킬 수 없는 나라라는 소리가 나올만도하다. 하기야 중고생 교복 한 벌에 70만원하는 나라가 이 나라이고, 입학 등록금으로 1천만 원을 넘는 돈을 내야하는 대학도 있다하니 그럴 만도 하다하겠다. 한국은 세계12위의 경제대국이다. 그런 나라의 일류대학이 세계 100대 대학에도 들지 못하고 있다. 이는 미래가 없다는 의미다. 등록금과 교복 값으로 학교 서열을 정한다면 넉근히 10위안에는 들것이다. 무언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돼 있다. 앞으로 20년이 더 걱정이라는 한 기업인의 걱정을 잊어서는 안 된다. 중국과 일본 등 주변 경쟁국들은 저만치 달려 나가고 있는데 오늘도 우리 정치인들은 승부도 없는 정치놀음에서 깨어날 줄 모른다. 국민들의 삶은 내 알바 아니라한다. 서민의 삶이야 어찌되든 집권에 이르는 길이 있다면 이들은 수단 방법도 가리지 않는다. 명분도 체면도 없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교육을 받을 권리, 인간의 존엄성 등은 선언적 규정에 지난지 오래다. 정작 중요한 이 같은 기본권 조항은 멀찌감치 제쳐두고 오늘도 5년 단임이 짧다느니 4년 연임으로 하자 느니 하며 임기타령들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인을 빗대어 하는 말 중에 ‘강이 없는데도 다리를 놓아주겠다는 사람들이 정치인’이라는 말이 있다. 얼마 전 본란에서 ‘이합집산의 계절’이라는 제하에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철새정치인들의 행태를 지적한 적이 있다. 그저께 한 정당의 국회의원들이 집단 탈당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보았다. 애당초 기대가 없었으니 이제는 실망도 없다. 대학 교수와 총장이 논문 표절시비에 휘말리는 나라, 등록금이 비싸 대학에 입학조차 못하는 나라,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나라, 중고생이 교복조차 마음대로 사 입지 못하는 나라가 이 나라다. 예전부터 소 팔고 땅 팔아가며 자식을 공부시키는 한국의 부모들이다. 대학에 합격하고도 미안해하는 자식과 대견스러워하면서도 엄청난 등록금에 한숨을 짓는 학부모. 2월은 차라리 잔인한 달이라 해야 옳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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