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희망만을 이야기하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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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까지 음력으로 섣달이었다. 그래서 지난주만 해도 ‘새해가 되려면 아직도 며칠간의 시간이 더 남았다’며 흐르는 세월을 붙잡아두려 애를 써 보기도 했다. 시간이 가고 해가 바뀌는 것을 이렇게 안타까우리만치 미루며 위안을 삼았었다. 그러던 것도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됐다. 이제 음력설도 지났다. 양력으로나 음력으로나 해가 바뀌었다. 정초부터 시민들의 얼굴에는 근심걱정이 역력하고 희망을 잃은 듯 한 탄식만이 들린다. 시민 모두가 느꼈으리라고 본다. 새해가 되었는데도 표정들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경기불황 때문만은 아님이 분명하다. 정치한다는 사람들만 제외하고는 시민들의 새해 안색이 도통 훤해 보일 기미가 없다. 이 나라의 관심은 오로지 연말 대선밖에 없는듯하다. 선거도 시민의 삶을 위해 시민들이 만들어놓은 제도이다. 정작 시민의 삶을 제쳐두고 누구를 뽑아 무엇을 한다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시민의 삶에 우선할 제도는 아무것도 없다. 모든 제도는 시민의 삶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듯이 요즘 대선 후보들 간의 검증 공방이 한창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종국에는 후보들 모두 나신이 될 듯 한 기세이다. 제도상 최고의 자리인 대통령의 자리는 그만큼 깨끗한 사람이 앉아야 하기 때문이리라. 이 시대에 정치인이라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깨끗함’과 ‘무균질’이라는 단어로 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마도 드물지도 모른다.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조차 교수들 간에 논문 표절 시비가 끊이질 않고 있다. 또 그저께는 현직 법관이 대법원장을 비판하는 글을 법원 내부 통신망에 올려 파장이 일고 있다. 일련의 이 같은 사건들이 밝고 건전한 사회로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면 이보다 더 바람직한 일은 없을 것이다. 옳지 못한 일은 가려지는 것보다는 드러나는 것이 낫다. 요즘 들어 부쩍 각종 비리 사건들이 하루가 멀다않고 터지고 있다. 결과를 보면 하나같이 모두다 그동안 맑아야할 곳이 맑지 못한데서 기인하는 것들로 밝혀지고 있다. 세상이 아무리 혼탁해도 맑아야 할 곳은 맑아야한다. 옛날 한 선비에게 왕이 정치를 권유하자 더러운 소리를 들었다며 흐르는 물에 귀를 씻은 일이 있었다. 마침 소에 물을 먹이려고 강가를 지나가던 이가 이 말을 듣고는 ‘깨끗한 물이 아니구나.’ 하고는 상류로 올라가서 물을 먹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너무도 잘 알려진 수 천 년 전의 이 고사에서 보듯이 정치는 원래 그런 것이라 치자. ‘시비곡직’, ‘선악’을 가리고 판단하는 법조계와 진리를 탐구한다는 상아탑이야말로 맑아야할 곳이 아닌가한다. 이밖에 더 있다면 종교계와 언론계도 들 수 있겠다. 맑아야 할 곳이 맑지 못하고 제자리에 있어야할 물건이 제자리에 있지 못하니 모든 악이 생겨나고 사회가 병들게 된다. ‘각자의 몫은 각자에게로’ 라는 말도 있다. 각자는 각자의 몫에 충실하여야 한다. 시민 각자가 이를 실천하고 주변에 별다른 상황이 없어야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올해 중에 2만 달러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소득이 나아져도 시민들이 실제로 느끼는 행복지수는 그리 높지 않은 것 같다. 높은 등록금이 학부모들의 허리를 휘게 하고 있다. 공부시키는 돈이다. 학자금 융자 또한 이자가 만만치 않다. 돈이 없어 공부를 못시키는 나라가 나라인가. 국가는 국민을 교육시킬 의무가 있다. 차라리 1만 달러 시대가 더 행복했다고 말하는 시민들이고 보면 사람의 행과 불행은 소득의 많고 적음에 비례하는 것은 아닌가보다. 우리나라 국민들처럼 복 많이 받는 국민은 없을게다. 양력설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인사를 주고받은 지가 불과 엊그제다. 그런데 또다시 이번 음력설에 똑같은 인사를 나누었다.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인사말 중에서도 좋은 말이다. 이렇게 덕담이 오가는 설 연휴동안 민심을 살펴보니 이제는 원성을 넘어 체념이었다 한다. 러시아의 작가 푸시킨의 ‘삶’이란 시 가운데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이란 구절이 있다. 시구대로 마음은 미래에 산다고 자위해 보지만 그래도 우리사회는 지금 뭔가 잘못돼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개안수술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된 한 시민이 말했다. 세찬 비바람, 눈보라 치는 겨울, 이 모든 것이 신기하고 소중하더라고. 그러니 이제는 희망만을 이야기하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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