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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百姓)은 무양(無恙)한가?

원기자 2020. 4. 7. 09:12

백성(百姓)은 무양(無恙)한가?/원현린 주필(主筆) 기호일보 승인 2020.04.07
제(齊)나라 왕이 조(趙)나라의 위후(威后)에게 사신을 보내 문안 인사를 전하도록 했다. 위후는 왕의 서신을 개봉하지도 않고 제나라 사자에게 물었다.

"해(歲)는 무양(無恙)한가? 백성(百姓)도 무양한가? 왕(王)도 무양하신가?(歲亦無恙耶, 民亦無恙耶, 王亦無恙耶)"

사신이 기분이 상해서 말했다. "신은 왕의 명을 받들어 위후께 문후를 드리는 것입니다. 지금 위후께서는 왕의 안부를 먼저 묻지 않으시고 농사 형편과 백성을 물으시니, 이것은 비천한 것을 앞세우시고, 존귀한 것을 뒤로 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하였다.

위후가 대답하여 말했다. "그렇지 않소. 만약에 풍년이 들지 않으면 어찌 백성들이 있겠으며, 만약 백성들이 없으면 어떻게 왕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옛날의 안부를 묻는 법을 보면, 근본을 버리고 끝을 물었습니까?"

「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편에 나오는 ‘제왕사사자문조위후(齊王使使者問趙威后)’내용 중 일부다. ‘해(歲)’는 농사짓기에 알맞은 기후를 말하는 것이고 ‘무양(無恙)’은 ‘무고(無故)’, 또는 ‘평강(平康)’의 의미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은 무양하지 않다. 세계 200여 개 나라 중 우리에게 ‘국민은 무양한가?’라고 안부를 묻는 국가는 없다.

누구도 예기치 않은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 창궐로 인해 지구촌 인류 전체가 위기에 처해 있다. 아무리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애써 자위해 보지만 걱정이다.

지금 나라가 어렵다. 이 와중에 국회의원 총선거를 치러야 하는 국민들이다. 그제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제21대 국회의원선거 투표안내문·선거공보’물을 받았다. 두툼한 봉투를 열어보니 예상은 했으나 그 많은 후보와 정당 수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선관위의 홍보 문구대로 ‘아름다운 선거,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가기 위한 선거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선거가 민주주의 꽃이라지만 유감스럽게도 작금에 탄생하는 정당들을 목도하고 있으려니 회의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정당들은 오로지 자당 의석수 늘리기에 갖은 꼼수를 동원해가며 재간을 부렸다. 때문에 생겨난 것이 듣기도 어색한 이름의 정당 이름들이다.

위성(衛星)은 행성의 주위를 돌고 있는 천체를 말한다. 여기서 차명(借名)하여 탄생한 정당이 ‘위성(衛星)정당’들이다. 유권자들은 정당 이름도 모르는 채 투표에 임하는 21대 총선이 됐다.

심지어 급조된 당명 때문인지 일부 당 대표와 선거대책위원장 직책을 맡고 있는 인사들마저도 자신이 속한 당의 이름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헷갈릴 정도다. 그러니 생업에 종사하기 바쁜 유권자들이 숙지하고 있을 리 만무하다.

국회는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입법(立法)기관이다. 결코 ‘위법(違法)기관’이 아니다.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역대 총선에서도 그래왔듯이 이번 21대 총선에서도 선관위가 공개한 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상당수가 법을 지키지 않아 사법처리를 당한 전과 이력들이 보인다.

게다가 병역 미필자 또한 한둘이 아니다. 총선이 끝나고 나면 국민들은 이들에게 형사법과 병역법의 입법권을 맡겨야 한다. 어불성설(語不成說)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이 무양하지 않으니 나라가 편할 리 없다. TV와 거리에서 총선 후보들의 유세 장면을 본적이 있다. 하나같이 후보들은 나라가 어떠한 어려움에 처해 있는지도 모르는 표정들이다. 진정 나라를 걱정하는 낯빛들이 아니다. 곳곳에서 들리는 ‘국해(國害)의원’ 소리에는 아랑곳하지도 않는 모양새다. 이것이 우리 정치의 현주소다. 국민들은 허탈하다.

헌법은 제8조에 정당에 관한 조항을 두고 있다. "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 정당은 그 목적·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하며,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조직을 가져야 한다"라고 명문화 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우후죽순 (雨後竹筍)격으로 생겨난 수십 개에 달하는 정당들에 대해 진정한 민주국가의 정당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

코로나19 환란 속에서도 국민들은 오는 4·15총선 투표에 참여하겠다는 유권자가 72.7%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는 소식이 들린다. 혜안을 지닌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