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자 방아에서 내려라 /2008/3/6
육조 혜능은 몸무게가 가벼운 탓으로 등에 돌덩이를 매단 멜빵을 걸머지고 디딜방아를 찧었다. 그것도 700명이 먹어대는 쌀이기에 밤을 새워가며 찧었다. 8개월 동안이었다. 그냥 발을 구르자니 체중이 얼마 나가지 않아 방아가 찧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혜능이 큰 인물임을 알고 스승인 오조 홍인대사가 동료들이 시기하는 것을 염려하여 잠시 방앗간으로 피신시킨 것이다. 그렇지만 혜능은 방아 찧는 일에 조금도 불평하지 않고 때를 기다렸다. 그 후 혜능은 홍인의 수제자가 되었고 스승의 뜻에 따라 야반을 틈타 절을 벗어나 남방불교의 창시자가 되었다.
스스로의 무게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법이다. 장관자리 맡아 달라고 제안이 오면 ‘나는 과연 출사(出仕)할 자격이 있는가’하고 자신에게 되물어보는 이는 없는 줄로 안다. 그렇지 않으니까 스스로 자신도 속이고 남도 속인다는 뜻의 자기기인(自欺欺人)이라는 사자성어가 다시 나타나나 보다.
새 정부들어 교수들의 출사가 많아졌다. 한때 모 대학 법대교수로 존경을 받던 한 교수는 한번 조정에 나간 후 다시는 학계에 돌아오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에 유신헌법을 기초했던 헌법학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교수든 누구든 역대 어느 누구도 벼슬자리를 마다한 이는 없었다.
학력위조, 논문표절 시비 등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끊이지 않고 있다. 학력·경력을 담은 이력서가 몽땅 과장됐거나 못 믿는다 한다. 국무위원 후보자마다 축재 과정이나 이력에 하자가 있다 하니 안타까울 정도다. 이로 인해 이명박 새 정부가 출범했음에도 조각(組閣)을 끝내지 못하고 난항을 하고 있다. 새 정부의 조각이 이렇게 어려워서야 어떻게 산뜻하게 출발할 수 있을까. 심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장에 가 봐도 짝퉁천국이다. 심지어 우리가 먹는 쌀조차도 가짜다. 시중 유통 브랜드 쌀의 38%가 품종표시규정 위반이라 한다. 게다가 며칠 전 군용 트럭에 사용하는 베어링을 중국산 저질 가짜를 상표를 위조해 납품한 업체가 국방부 조사본부에 적발되었다. 군 트럭은 다수의 군인들을 수송하고 군수물자를 실어 나르는 교통수단이다. 일선 장병의 안전에 비상이 걸렸다. 진짜에 무균질은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이 나라에는 사람이든 물건이든 순도 100%의 진품이 그렇게도 없는가.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도덕이라는 잣대 일 게다. 부부교수 25년에 30억 원이면 양반 아니냐는 식이면 곤란하다. 사실여부를 떠나 자연을 지극히 사랑한 나머지 농지를 구입했다느니 제자의 논문을 표절하였느니 하는 부도덕 시비(是非)에 휩싸여가지고 어떻게 정치를 하겠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몇 십억 원이라는 돈은 밤낮없이 치부하는데 매달려야 모을 수 있는 액수이다. 그렇게 하려면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어느 시간을 내어 어떻게 연구하고 강의 준비를 하여 후학들을 가르칠 수가 있었을까.
든 것이 없으면 가벼운 법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제자의 논문을 표절하면서까지 머리무게를 늘리려 했다면 그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인사들이 한둘이 아니라는데 있다.
모두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함은 탓하지 않고 요행 무사통과하기만을 기다린다. 인사검증 시스템에 의해 흠이 드러날 때 까지 가슴조이며 기다리다 종국에는 망신만 당하는 꼴들이 안쓰럽다.
경제규모 세계 10위권이면 경제 대국이다. 그만큼 나라 살림도 커졌다. 국가에 할 일이 많아졌다. 당연한 귀결로 국가는 국민들에게 더 많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이다. 오늘 새 정부의 방아꾼들이 찧는 쌀로 온 국민이 먹고 살아야 한다. 가벼운 몸으로는 디딜방아를 찧을 수가 없다. 가벼운 자 방아에서 내려라. 그렇지 않으려거든 혜능이 그랬듯 차라리 돌짐이라도 지고 방아 찧는 모습을 보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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