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무게 /2008/4/3
국민이 요즘처럼 떠받들어지는 때도 없었다. 18대 총선 유세(遊說)가 한창이다. 후보마다 국민을 잘 섬기겠다고 허리 굽히며 한 표를 부탁한다. 거리마다 시장골목마다 시민이 많이 몰려 있는 다중 집합장소면 가리지 않는다. 후보들은 생업에 여념이 없는 시장상인들을 붙잡고 “경기를 활성화시키겠다”, “살기 좋은 지역으로 만들겠다”며 애처로우리만치 지지를 호소하고 다닌다. 선거가 끝나면 곧 이내 잊어버릴 사람을 상대로.
또 다시 찾아온 국민 섬기기다. 유권자들의 투표가 끝나면 으레 그랬듯이 정치인들은 그들만의 길을 갈 것이다. 그 때가 되면 한때 국민을 그렇게도 잘 섬기겠다던 정치인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 정치인들에게 국민은 안중에도 없게 된다.
이를 두고 프랑스의 사상가 루소는 “국민이 투표에 참여하는 날만 자유로워지고 투표가 끝나면 또 다시 노예상태가 된다”라고 표현했다. 그의 말대로 아직은 투표하기 전이기 때문에 지금은 국민들이 귀족대우를 받는다. 하지만 투표가 끝나면 곧 잊어지는 국민들이다. 그래도 순박한 상인들은 이 후보 저 후보 가리지 않고 두 손을 잡으며 선전을 당부한다.
이렇듯 가는 곳마다 국민의 뜻이라 하고 국민의 뜻을 묻겠단다. 그렇게 국민이 가벼운가. 정치인들이 말하는 ‘국민의 뜻’은 국민의 뜻이 아니라 정치인 그들의 뜻이다. 마음대로 해놓고 국민이 원해서 그렇게 했다고 한다. 과거 유신헌법도 국민의 뜻을 물었다 했다.
‘정치인의 뜻’을 국민의 뜻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뜻조차 모르고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인사들이 너무 많다. 입법기관으로서의 국회가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국민을 대표해 입법권을 행사하겠다는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
국민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니다. ‘국민의 무게’는 정치인들이 너나없이 그렇게 들먹이리만치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은 언제나 주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치인들만이 민심이 변했느니, 어디로 갔느니 하고들 찾아다니느라 야단이다.
세계의 각 나라들이 국회를 존중하고 떠받들고 있다. 우리나라만이 유독 존경과 추앙을 받지 못한다. 왜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는가. 이는 국민이 대접을 못 받는 것에 다름없다. 답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표다워야 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해 온 것이 사실이다.
미연방 의회는 워싱턴D.C 정 중앙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는 어떠한 건물도 의사당보다 높이 지을 수 없다. 단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기려서 세워진 워싱턴기념탑을 제외하고. 왜냐하면 의회는 국민의 대표기관이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국민 위에 설 수 없다는 의미에서다. 이것이 미국의 의회이며 미국 민주주의다.
우리의 경우 국민의 헌법상 지위는 지대하다. 대한민국 헌법1조에는 ‘대한민국의 주권(主權)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문화돼 있다. 이처럼 주권재민(主權在民)을 선언한 헌법 또한 국민이 만들었다.
민주국가에서 헌법을 시원적(始原的)으로 창조하는 힘을 의미하는 헌법제정권력은 오직 국민에게 있으며 양도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헌법제정권력의 본질이고 국민만이 유일한 헌법제정권력의 주체이다.
4년만에 한 번씩 밀려들었다가 나가는 조수( 潮水)가 있다.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선거가 그것이다. 이제 6일 후면 그 많던 유세장의 군중들과 후보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다. “국민의 일부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속일 수는 있다. 또한 국민의 전부를 일시적으로 속이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국민 전부를 끝까지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민’의 뜻을 가장 올바르게 알고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내용의 연설에서 민주주의를 단적으로 표현해 유명한 전 미국대통령 링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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