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복 연설의 효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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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우리에게 숱한 도전과 투쟁의 과정을 보여주는 교과서입니다. 결승선에 도달하기 전에 무수한 논쟁이 오가지만, 일단 결과가 정해지면 승자나 패자나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화합의 정신임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 힘을 실어준 지지자들이 느끼는 것처럼 나도 실망스럽습니다. 하지만 애국심으로 실망감을 극복해야할 것입니다. … 위기가 닥치면 함께 힘을 모았듯이, 이제 모든 논란이 끝났으니 대열을 정비해야 합니다. 지금은 분열보다는 화합이 더 절실함을 깨달아야 할 시점입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일했고 싸웠다. 나는 이로 인해 약간이라도 변화가 있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미국의 선거에서 패자란 없다. 당선과 낙선에 관계없이 모든 후보는 다음날 아침이면 미국인으로 눈을 뜨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이 지구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영광스럽고 괄목할 만한 재산이다. 이러한 축복은 의무와 함께 온다. 우리는 지금 우리 국가를 위해 함께 일해야 한다. 우리는 공통의 대의를 찾아야 하며 분노나 소요 없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위에 든 두 가지 예문은 미국의 민주당 후보 엘 고어와 존 케리가 각각 2000년과 2004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패하고 행한 연설문 내용의 일부들이다. 당시만 해도 필자는 이러한 승복연설에 감동을 받았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정치풍토에 비추어 보면 먼 나라 이야기였으니까. 게다가 ‘승복연설’이라는 말 자체를 처음 접했으니까. 두 사람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분열하지 말고 힘을 함께 모을 것을 역설하고 있는 점이 부럽기까지 하기에 장황하게 인용해 봤다. 그간 우리는 어떠했는가. 결과에 승복은커녕 선거가 끝나기가 무섭게 패자는 또다시 흩어지고 모이고 하는 이합집산을 거듭해 온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잣대는 자신의 이해득실뿐이었다. 거기에는 애국심도 애당심도 아니었다. 오로지 맹주라고 자처하는 이들의 계산된 이익에서였다. 이러한 모습으로 점철된 것이 지나간 우리의 정치사라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닌 성 싶다. 사실 일부 국민들은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이 있기까지 경선 후의 분당을 조심스레 점친 것도 사실이다. 패자는 과연 승복할까 하며. 적과의 싸움보다도 치열했던 공방전이었기에 더 그랬다. 당이 스스로 만신창이로 변하는가 싶었다. 같은 당 당원들 간에 선을 넘는 수위의 행동까지 나왔다. 때론 이해하기 어려웠다. 필자는 여기서 특정 정당을 칭찬하자는 것이 아니다. 도를 더해가며 치열하게 싸우던 그 정당에서 우리가 그토록 목말라 했던 승복연설이 나왔기에 하는 말이다. 이젠 됐다. 박근혜 후보의 “깨끗이 승복하겠다”는 내용의 ‘승복연설’에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읽을 수 있었다. 결과에 승복하고 백의종군하겠다고 했다. 모든 것을 덮어두고 가자고 했다. 예의 그렇듯이 그는 차분히 그리고 또렷이 연설을 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슬픈 연설’이었으나 필자는 이날의 연설을 우리나라 ‘승복연설의 효시’로 기록하고 싶다. 필자는 위에서 언급한 고어나 케리가 행한 연설 외에는 더 이상 이 같은 유형의 연설은 못보고 못들을 줄 알았다. 미국에서는 흔한 연설인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실로 오랜만에 들려오는 신선한 연설이었기에 재삼재사 떠올리는 것이다. 한마디 추신하면 정작 연말 대선이 남아있는데도 마치 본선을 치른 것처럼 착각하는 이들이 있다. 이번에 끝난 한 정당의 대통령후보 경선대회는 몇몇 정당 가운데 일개정당이 후보를 단일화한 것뿐이다. 비유하자면 아직은 반에서 1등을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마치 전교에서 1등을 한 것으로 착각들을 하고 있는 듯하다. 지리멸렬 했던 소위 범여권도 또다시 한데 뭉쳤다. 한나라당은 이들과 일전을 치러야 한다. 이들에게는 아직도 후보 단일화 작업이 남았다. 과정이 올바라야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다. 경선과정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지길 국민들은 바란다. 각 진영 모두 본선에서 선전하길 바란다. 국민은 여전히 어느 편도 아니다. 연말 대선 날짜만을 조용히 기다릴 뿐이다. 국민은 아직도 누구를, 어느 정당을 지지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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