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산(下山)길을 조심해야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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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왔다고 방심 말고 집 앞까지 안전하게’ 언젠가 도로공사에서 내건 안전운전 표어다. 산은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 더 다치기 쉽다. 힘든 산길을 다 내려왔다는 안도감에 정신이 해이해져 다리에 힘이 빠지기 때문이다. 등산을 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 느꼈을 것이다. 필자의 한 친구도 오랜 시간의 산행 끝에 산을 거의 다 내려가다가 발목이 삐어 한동안 고생하는 것을 보았다. 산은 내려갈 때를 조심해야 한다. 흔히 사람 씀을 이야기 할 때 ‘의인막용(疑人莫用)’, ‘용인물의(用人勿疑)’ 란 표현을 쓴다. 사람을 의심하거든 쓰지 말고, 일단 사람을 썼으면 의심하지 말라는 이 말은 기업 총수들의 인사스타일을 좋게 이야기할 때 주로 인용되는 문구다. 말은 이렇게들 하지만 실제로 이를 실천하는 이는 드물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레임덕은 없다고 호언하다가 권력형 비리에 휘말리고 있다.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한 측근의 염문 스캔들, 또 다른 비서관의 뇌물 수수혐의 등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인사가 만사라 했다. 노대통령은 인사에 실패한 것이다. 인사권자는 위에 든 용인술(用人術)) 원칙에 따라 인사를 했으리라 믿는다. 마지막까지 믿어준 것은 좋으나 믿는 도끼에 발 등 찍힌 격이니 잘된 인사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세인들은 결과를 놓고 따지기 때문이다. 잘되면 사람을 잘 써서 그렇다 하고 그렇지 않으면 사람을 잘못 써서 그렇다고 한다. 그토록 충복으로 믿고 국정을 맡겼던 참모들의 비리행위는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하는 현 정권의 말기를 참담하게 몰아가고 있다. 말기적 증상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어떠한 게이트도 레임덕도 없다던 현 정권이 임기 말에 이르러 비리공화국으로 낙인찍히고 있는 것이다. 노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지금의 형국이 사면초가(四面楚歌)일 게다.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둔 야당은 야당대로 호기(好機)다 하여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고 범여권 또한 현 정권을 흠집 내야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다며 가차 없이 공격을 가하고 있다. 인재 기용을 잘못하여 정치를 망쳐 놓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그 사람을 알고자 할 진대 그 친구를 보고, 그 자식을 알고자 할 진대 그 부모를 보라는 말이 있다. 사람하나 볼 줄 모르면서 큰 나라 살림을 어떻게 꾸려 왔는지 묻고 싶다. 측근만을 놓고 사람을 쓰다 보니 그 나물에 그 밥이란 소릴 듣게 되는 것이다. 측근들이 부정과 결탁해 각종 비리를 저지르는 것을 몰랐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아무리 등잔 밑이 어둡다고는 하나 매일 조석으로 머리를 맞대고 국정을 논의하는 참모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그리도 까맣게 몰랐다는 말인가. 국정에는 잠시의 중단도 있어서는 안 된다. 이제 어찌 할 것인가. 대통령선거는 올해 안에 치러지나 당선자의 취임은 내년 2월 25일이다.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자칫 무정부상태를 초래하기 쉽다. 걱정이다. 대통령으로서 할 말이 없게 됐다고 기자회견장에서 유감을 표하는 평소의 노대통령답지 않은 씁쓸한 표정에서 국정의 공백이 보인다. 아름다움과 추함을 살피어 구별하는 안목이나 능력을 심미안(審美眼)이라 하고, 사물의 본질이나 이면을 꿰뚫어 보는 눈을 혜안(慧眼)이라 한다. 대통령이 이 두 가지 눈 가운데 하나만 지녔어도 하는 아쉬움이 필자의 심정이다. 이번 사태는 현 정권 스스로 자초한 결과다. 할 말이 없게 됐다는 말만 가지고는 안 된다. 누차 지적을 했다. 그때마다 깜도 안 되는 것 가지고 흔든다며 화만 내지 않았는가. 그러잖아도 임기 말이면 권력누수니 하여 무정부주의를 연상케 하는 일이 왕왕 터지곤 한다. 레임덕 현상이 없을 순 없겠지만 기간을 가급적 최대한 줄여야 한다. 사람도 몸이 약해지면 각종 병마가 찾아든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임기 말이 다가올수록 양신(良臣)은 안보이고 사특한 무리들이 국정을 농단한다. 나라가 혼란스러우면 황충(蝗蟲)의 무리가 들끓는 것을 우리는 지나간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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