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무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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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에서 독수리가 비둘기 한 마리를 잡아먹으려고 하는데 마침 도를 닦고 있던 스님이 “그 새를 살려 달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독수리는 비둘기와 같은 무게의 고기를 달라고 했다. 수도승이 한 쪽 허벅지 살을 베어 저울에 올렸지만 새가 무거웠다. 그러자 스님은 다른 쪽 허벅지 살을, 나중에는 팔과 다리를 베어 저울에 올렸는데도 비둘기가 여전히 더 무거웠다. 수도승은 나머지 몸통으로 저울에 올라갔다. 그제 서야 양 저울의 무게가 같아졌다. 말 할 것도 없이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하기 위한 이야기다. 비유적 표현이지만 비둘기와 같은 새 한 마리의 생명의 무게가 이럴진대 하물며 사람의 목숨에 있어서야. 급격한 사회의 변화는 가치관의 혼란을 가져온다. 이 와중에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것이 청소년을 포함한 시민들의 자살 현상이다. 자발적 또는 의도적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를 자살이라 한다. OECD 국가 가운데 자살 증가율 1위, 자살 사망률 4위가 한국이다. 최근 자살 관련 통계를 보면 지난해 자살자는 1만2천968명으로 하루 35.5명꼴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지난 2000년부터 2006년까지 7년 동안 764명의 초중고생이 자살, 매년 평균 109명의 청소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청소년 자살 원인으로는 부모의 실직 등 가정경제 문제가 20.8%, 부모의 이혼이나 가출 등 가족문제가 19.2%, 기타 이성 관계, 비관, 성적불량 등이 사유다. 이유야 어떻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 각 대학들마다 2008학년도 대학입학 수시모집 시험이 한창이다. 논술문제로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겜의 ‘자살론’이 왕왕 출제되기도 한다. 이 책에서 그는 자살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첫째가 이기주의적 자살이다. 일상적인 현실과 좀처럼 타협하거나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택하는 자살 유형이다. 다음으로는 이기적 자살과는 대조적으로 자신이 속한 사회나 집단에 지나치게 밀착됐기 때문에 일어나는 이타적 자살이 있다. 미국 함대가 주둔해 있던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한 일본의 가미가제 자살 특공대가 이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아노미(무질서 상태)적 자살이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지던 가치관이나 사회 규범이 혼란 상태에 빠졌을 때보다 자주 일어나는 자살유형이다. 여기서 보듯 뒤르겜은 자살은 개인적 요인보다는 사회적 요인이 더 크게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사회현상으로 보았다. 현대의 각종 범죄에서도 책임을 논할 때 사회적 책임론이 강조되는 것과 비슷한 시각이다. 여하튼 자살은 죄악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기결수들의 자살과 일본의 할복자살 풍습, 과거 일부 국가에서 과부의 자살 부추김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국가와 종교에서 자살을 죄악으로 간주하고 있다. ‘사자의 제왕보다 이승의 노예가 낫다’는 말과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는 말들은 모두 살아있음의 귀중함을 표현하는 말들이다. 자살 사례를 분석해 보면 실제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죽음을 택하기보다는 다른 요인이 훨씬 많다. 물질이 풍부해지고 소득이 높아가도 크게 줄지 않는 것이 자살률이라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람은 물질로만 살 수 없다. 자살은 갑자기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인성교육의 등한시, 인문학의 홀대 등에서 오는 철학의 부재, 가치관의 혼란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 독립 선언문에 보면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하며 그들은 조물주에 의해 일정한 불가양의 천부의 권리를 부여받았으며 그 중에는 생명,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포함되어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선언대로 시민의 권리는 국가가 보장해 주어야 한다. 자살은 이제 더 이상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국가적인 문제다. 자살문제를 국가차원에서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청소년 매년 109명 자살. 이는 한해 평균 2~3학급의 학생들이 교실에서 사라지는 숫자이다. 실정이 이런데도 아무런 대책이 강구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나라도 국가라 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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