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현린 칼럼

나쁜 사람들이군!

원기자 2012. 10. 3. 16:01

나쁜 사람들이군!
2008년 10월 29일 (수)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중앙의 한 부처 일부 공무원들이 사무실에서 캐비닛을 옮기다가 허리가 삐끗했다 하여 국가 유공자로 등재되고 동호인회 산행도중 다쳤다하여 국가유공자 등록을 신청, 영광스런 유공자 자격을 얻었다 한다.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는 표현은 이러한 때 쓰라고 만들어진 것 같다. 하도 기가 막혀 말문이 막힌다.


필자는 갖가지 사건을 접하고 여러 경우의 사례를 보아 왔지만 이번 ‘가짜 국가유공자’건과 같은 예는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다. 이러한 일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생각하니 온 몸에 힘이 빠지고 눈앞이 캄캄해 온다. 이보다 더 허탈한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다. 이들이 과연 나라가 위난에 처했을 때 총칼을 들고 나가 싸울 사람들인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도 증거가 없어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진짜 유공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찾아내고 발굴하여 포상하고 받들어 추앙해야 한다. 국가는 국가 유공자 본인뿐만 아니라 그 자녀에게까지도 혜택을 준다. 학자금과 취업 혜택을 준다. 이번에 밝혀지지 않았다면 그 자녀들도 대를 이어 영광스런 국가 유공자 자녀로서 대대손손 떠받들어졌을 것이다.


불명예도 세습됨을 알아야 한다. 역사드라마의 한 작가는 후손들이 찾아와 조상의 잘못되었던 점을 부각시키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가 괴롭다고 했다. 이렇듯 역사는 ‘오명(汚名)’도 함께 기록되어 남긴다. 오늘 나의 잘못된 행동이 후대에 이르러 욕이 됨을 왜 모르는가. 공직자라면 역사에 이름 한 줄 남기는 것이 광영일 것이다.


그러잖아도 공직자 쌀 직불금 문제로 온 나라가 어수선하다. 자진신고 기간도 지난 27일로 마감됐다. 28일부터 실태조사에 나서 추가 확인 작업을 벌이는 등 부당수령 여부를 가리고 있다. 인천시 공무원의 경우만 보더라도 자진 신고한 쌀 직불금 수령건수와 금액은 350건에 8억1천135만원 상당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찌 경제 위기가 안 오고 나라가 평안할 리 있겠는가. 어디 한군데 질서 정연한 곳이라고는 보이질 않는다. 국회도 그렇고, 내각도 그렇고, 심지어 부정부패를 감사하는 감사원마저도 미덥지가 않다. 나라 기강이 바로 선다는 것이 이상한 일일 게다.


공직자에게는 일반 시민보다 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가 주어지고 있다. 몇몇 공무원에게 물어보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적 신분이 높인 이에게 주어지는 도덕적 의무)가 뭐냐고. 그런 말은 모른다고 답했다. 모를 리가 없는 사람이었다. 솔직한 대답이었는지 모른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다. 애당초 기대하지 말았어야 했다. 우리 공직자의 자세에 문제가 있다. 물론 훌륭한 다수의 공직자가 있음을 전제로 한다. 일부가 전체를 흐리고 있다.


그까짓 돈 몇 푼에 이름을 파는가. 그것도 농민들에게 돌아갈 피 같은 돈을…. 우리 국민의 상당수는 농민의 자식이다. 1970년대 이후에나 벗어났겠지만 그 이전 세대들은 누가 뭐래도 농민의 자식들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꼴이다. 가짜가 진짜를 다 죽이고 있다. 가짜 농민이 판을 치고 진짜 농민이 죽어가고 있다. 농민에게 돌아갈 몫을 공무원이 챙긴다면 이것이 바로 탐관오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다. 그 나라의 장래를 알려면 그 나라 공직자의 자세를 보라 했다. 공무원의 청렴도를 보면 그 나라가 힘이 있는 강국인가, 힘없는 약소국가인가를 알 수 있다.


역사상 지구상에는 수많은 민족이 나라를 세웠다간 멸하곤 했다. 힘이 있는 민족은 역사를 면연이 이어갔고 힘이 없는 민족은 가차 없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갔다. 세계 각국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필자에게 한 중노인이 물었다. “나도 농사를 지었는데 쌀 직불금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하고 묻기에 간단히 설명을 했다. 노인은 혀를 차면서 “나쁜 사람들이군!”이라고 한마디 하고는 더 이상 묻지도 않고 말을 잇지도 않았다.


가짜 국가유공자나 쌀 직불금 부당 수령자나 모두가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잃는 소인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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