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현린 칼럼

내 마음 속의 계영배(戒盈杯)

원기자 2012. 10. 3. 16:07

내 마음 속의 계영배(戒盈杯)
2008년 12월 10일 (수)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연말이다. 송년회다 망년회다 이름 지어 회식자리가 빈번하다. 음주와 흡연의 기회가 많은 것이다. 지나친 음주와 흡연은 건강을 해친다. 만약 위장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주인님께서 들이키시는 술이 저에게는 독극물입니다’라고 할 것이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는 역시 심장과 폐가 말하기를 같은 말을 할 것이다. ‘주인님께서 담배 연기를 마실 때마다 저는 터지고 질식할 것만 같습니다’라고.


건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여러 번 듣고 있다. 연말이고 하니 이번만은 복잡한 정치이야기는 접고 술 이야기 한번 해보는 것도 좋을 성 싶다.


지방자치단체가 절주잔을 만들어 보급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지난해 강원도 원주시가 기존 소주잔의 3분의 1, 맥주잔의 2분의 1크기의 술잔을 제작, 배포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한다. 금년에는 경북 영주시보건소가 음주문화 정착과 술을 덜 마시도록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해 절주잔을 만들어 관내 음식점에 나누어 주었다. 두 도시 모두 시민들의 절주생활로 건강을 지키자는 의도에서다.


‘계영배(戒盈杯)’라 하는 신비스런 술잔이 있다. 이 잔은 70%까지만 채워야하지 그렇지 않고 넘게 따를 경우 이미 따른 술까지 몽땅 없어진다는 신기한 잔이다. 가득 차는 것을 경계한 말이다.


노자 도덕경 제9장에 보면 ‘지속적으로 가득 찬 것을 유지하려는 어리석은 짓은 차라리 그만 두는 것만 못하다 -持而盈之(지이영지), 不如其已(불여기이)’라는 말이 나온다. 아마도 이 대목에서 술잔의 이름이 지어진 듯하다.


좋은 친구와 술자리를 함께하니 천 잔의 술도 부족하다 했다. -주봉지기천배소(酒逢知己千杯少)-.


‘술’ 하면 이태백이다. 그는 ‘장진주(將進酒)’에서 ‘양고기 삶고 소 잡아 즐기려 하나니 모름지기 한 번 술 마시면 삼백 잔은 마셔야지’하고 호탕하게 노래했다. 이 시인은 또 ‘월하독작(月下獨酌)’에서 ‘석 잔을 마시니 도를 통한 듯하고 한 말을 마시니 자연과 합치된다. -삼배통대도 일두합자연(三杯通大道 一斗合自然)’이라고 하여 술에 대한 예찬이 절정에 이르고 있다. 병석에 누워서도 술을 마셨다는 고려 문인 백운 이규보는 ‘명일우작(明日又作)’에서 ‘술 깨어 인간세상에 산다는 것이 무슨 재미가 있는가. 술 취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진실로 옳다’고 까지 표현했다. 조선시대 송강 정철도 ‘장진주사(將進酒辭)’에서 ‘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 꽃 꺾어 산 놓고 무진무진 먹세 그려’라고 했다.


이는 어디까지나 시문(詩文)의 표현들이다. 그렇다고 이를 따르려고 무턱대고 너무 마시다가 건강이라도 상하게 된다면 그보다 어리석은 짓은 없을 것이다.


의학의 발달로 인간 수명이 길어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기대수명이 79.6세이니 조만간에 100세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건강수명은 10년을 감해야 한다고 한다. 막바지 10년은 질병을 앓아가며 ‘골골 10년’을 살아간다는 해석이다. 살아 있을 때 건강하게 사는 것이 복이라 했다. 지나친 음주와 흡연은 건강장수의 적이다.


예부터 동양에서는 두주불사를 호쾌한 사람으로 여겼다. 그렇지만 술을 가까이 한 사람치고 오래도록 건강하게 산 사람이 드물다고 한다. 평생을 술로 지낸 중국 동진의 시인 도연명은 술을 끊겠다는 ‘지주(止酒)’라는 제하의 시에서 ‘술을 안마시면 즐겁지 못한 줄만 알았지, 내 몸에 이로운지 몰랐노라. 비로소 끊는 것이 좋음이라 깨닫고, 오늘 아침 참으로 술을 끊었노라.’하고 노래했다.


건강한 시민이 건강한 도시를 만들 수 있다. 술을 아예 끊지 못하겠거든 줄이기라도 해야 한다. 금년 한해도 저물고 있다. ‘건강도시 인천’의 앞날을 위해 절주잔, 계영배로 건배를 제의해본다. 술잔의 크고 작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잔이 아무리 작아도 여러 잔 마시면 그게 그거다. 무엇보다 음주를 절제한다는 마음의 자세와 각오가 중요하다. 내 마음속의 계영배야말로 진정한 절주잔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