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름하는 공직자, 그 몇이나 될까 | ||||
| ||||
“마속은 정말 아까운 장수요. 하지만 사사로운 정에 끌리어 군율을 저버리는 것은 마속이 지은 죄보다 더 큰 죄가 되오. 아끼는 사람일수록 가차 없이 처단하여 대의를 바로잡지 않으면 나라의 기강은 무너지는 법이오.” 제갈량이 군율을 어긴 마속의 처형을 명한 후 소맷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마룻바닥에 엎드려 울었다는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고사다. 지나간 정권이든 현 정권이든 공명이 마속을 참하는 심정으로 국사를 그르친 주위의 측근을 단 한명이라도 베었다면 나라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전 사람의 그릇된 일이나 행동의 자취를 보고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는 것을 전철(前轍)을 밟지 않는다고 한다. 과거 정권마다 동생이, 아들이 형과 아버지의 권세만 믿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하여 국정을 농락하다가 감옥에 가곤 하는 일이 대한민국에서는 비일비재했다. 똑같은 말뚝에 두 번 걸려 넘어지는 자 크게 어리석다 했다. 바로 눈앞에서 똑바로 목도하고도 잘못을 되풀이하는 꼴을 보고 있노라니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을 마치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인 양 휘두르는 완장(腕章)들을 보면 측은감이 앞선다. 얼마나 못 먹고 못살았으면 그렇게까지 한꺼번에 먹으려다가 체하는지 불쌍하기 짝이 없다. 마치 누대(累代)에 걸친 화풀이라도 하듯이.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겐 정권이 교체되기만 하면 ‘이번에는 또 누구누구가 감옥에 가느냐?’가 관심의 대상이 돼왔다. 깨끗한 도덕성을 내세우며 제6공화국 4번째 정부로 출범했던 참여정부다.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에 대해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의혹과 관련,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나라를 어지럽혀 징역형을 선고받은 국사범들의 판결문 잉크가 채 마르기 전이다. 또 다시 똑같은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착잡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차라리 측은하다는 표현이 낫겠다. 전 정권의 실세들이 줄줄이 수사선상에 오르자 ‘내 측근이 참 많더라’ 하고 발언을 하고 있는 전임 대통령이다. 논어 헌문(憲問)편에 보면 ‘견리사의(見利思義) 견위수명(見危授命)’-이로움을 보았을 때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당했을 때 목숨을 바침-이라는 말이 나온다. 한말 안중근 의사가 감옥에서 유필로 남겨 우리에게 잘 알려진 문구다. 이를 이명박 대통령이 인용하여 “나라가 어려울 때일수록 목숨을 던지는 자세로 임하겠다”고 했다. 대통령 스스로의 각오임에도 이 말뜻은 전장에서 장졸들에게 내려지는 추상같은 명령에 다름없다.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은 헌법상 국군 통수권자이다. 누구도 항명하거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베임을 당하여야 한다. 끄떡도 하지 않는 것을 요지부동(搖之不動)이라 한다. 어디 해 볼 테면 해 보아라이다. 기업이 고사되어 가는데도 금융권이 대통령의 말을 듣지 않는다. 영이 서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기강이 바로 서지 않고서는 질서를 유지할 수가 없다. 군기가 서려 있는 군대는 깃발도 정연히 나부낀다고 했다. 영이 통해야 질서고 뭐고 바로 선다. 대통령의 말이 안 통하는데 질서가 잡힐 리 만무하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면 그것은 무정부상태와 다름이 없다. 무정부는 독재를 낳는다. 지나간 역사가 말해주듯 자칫 차라리 독재가 낫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나라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부처 수장이 뇌물을 받아 감옥에 가는 나라가 이 나라이다. 정·경·군부 할 것 없이 신분 높은 이들이 몇 푼 안 되는 금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영어(囹圄)의 몸이 되곤 하는 나라도 이 나라이다. 나라가 어렵다. 나라 걱정으로 깊이 시름하는 공직자가 그 몇이나 될까. |
'원현린 칼럼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성법복(人性法服) (0) | 2012.10.03 |
---|---|
내 마음 속의 계영배(戒盈杯) (0) | 2012.10.03 |
어린이가 있기에 미래가 있다 (0) | 2012.10.03 |
‘다수로부터 하나’ (0) | 2012.10.03 |
단 한 번의 시험 (1) | 2012.1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