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밭은 이제 그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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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식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쌀(米)이 우리의 식탁에 오르기까지는 여든 여덟 번(八十八)의 농부의 손을 거쳐야 한다고 한다. 한 톨의 쌀은 그만큼 농부의 정성과 땀이 배어 있는 소중한 곡식이라는 이야기다. 어쩌다 지방에 다녀오노라면 예전에 논밭이던 곳에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서있는 것이 보인다. 말 그대로 상전벽해다. 농지는 간 데 없다. 심지어 높던 산도 깎이어 주택단지가 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요즈음처럼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 적은 일찍이 없었다. 아파트가 남아도는데도 오늘도 짓고 또 짓는다. 미질이 좋기로 이름난 김포나 여주, 이천지역도 이미 신도시 개발로 농지가 잠식되어가고 있다. 현 추세대로라면 논밭이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우리는 스스로 누천년 우리를 먹여온 곡창지대를 망치고 있는 것이다. 쌀은 아시아인의 전통주식이다. 세계인구의 절반 이상이 쌀을 먹고 있다. 따라서 ‘쌀은 곧 생명이다’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렇게 쌀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인 기호 식품이 아니다.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전문가들은 벼를 심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쌀을 재배하여 100명이 먹고 살 수 있는 넓이의 땅에 밀을 심으면 75명이 먹고 살 수 있고, 목초지를 만들어 고기를 먹는다면 9명이 먹고 살 수 있다고 한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볍씨 1두를 뿌려 60두를 거두면 비옥하여 살기 좋은 곳이고, 40~50두를 수확하면 다음, 30두를 거두면 살기 힘든 곳이라 했다. 우리사회는 농경사회였다. 여전히 농경문화의 정서가 곳곳에 배 있다. 예부터 우리 농민은 굶어 죽어도 씨앗만큼은 삶아 먹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 논과 밭이 없다면 종자도 남길 필요가 없다 하겠다. 국제유가 급등에서 보듯 자원이 무기화한 지는 이미 오래다. 우리는 말로만 ‘유비무환’이었다. 고유가가 현실화하자 ‘승용차 홀짝제 운행’이니 하고들 야단법석이다. 유가 상승은 누구라도 예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식량도 마찬가지다. 밥은 하루 이틀만 굶어도 못산다. 먹는 것을 줄이는 데엔 한계가 있다. 산자수려하던 금수강산도 피폐해졌다. 산도 물도 온통 더럽혀져 있다. 국토는 신음하고 있다. 단지 지금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산하마저 깎고 메우고 하여 어디 한군데 성한 곳이 없다. 남아 있는 얼마간의 전답에도 머지않아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설 것이다. 세계의 국가들이 식량을 무기화한다면 속수무책이다. 이를 경고하는 이도 없다. 우리만이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국민들인지 모른다. 논밭을 오랫동안 가꾸지 않으면 그 땅은 황폐화한다. 쌀이 얼마나 남아돈다고 휴경 수당까지 주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가히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언젠가 고갈될 식량을 어디에서 조달할 것인가를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한다. 국제사회는 냉엄하다. 우리가 먹을 양식은 우리가 마련하고 비축해야 한다. 높은 농업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대한민국이다. 농지가 없다면 이 모든 기술력도 아무 소용이 없다. 국내 농지를 몽땅 파헤쳐놓고 있으니 식량자급자족이 안 된다. 해외에 곡물 기지를 확보하지 않고서는 식량조달이 어려운 시대가 도래할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필자와 잘 아는 지역 정치인이었던 한 인사가 우크라이나에 농지확보를 추진하면서 경고한 말은 설득력이 있다. 그는 이미 곡물전쟁은 시작됐다 한다. 날로 폭등하는 곡식가격, 곡물 무기화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미 네덜란드, 독일, 스위스, 스웨덴 등 서방 제국들이 우크라이나 등 자국 밖에서 농지확보를 위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점을 예로 들었다. 논과 밭이 사라져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위기감을 느낀다. 훗날 아파트를 철거하여 쌀보리를 생산해야 하느니 마느니 하고 호들갑을 떨기 전에 미리미리 대비하자. 국토는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땅이다. 우리와 후손들의 먹을 양식을 위해서 농지만큼은 보전해야 한다. 차라리 산을 깎아 집을 지을지언정 논과 밭만은 안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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