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현린 칼럼

“내 즐겨하는 바가 아니다”

원기자 2012. 10. 3. 15:51

“내 즐겨하는 바가 아니다”
2008년 09월 03일 (수)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올해도 시민들은 이 산 저 산 조상 묘를 찾아 벌에 쏘이고 뱀에 물리고 예초기에 다쳐가며 벌초를 하고 있다. 필자도 지난 주말 교통체증을 무릅쓰고 선산을 찾아 벌초를 하고 돌아왔다. 다행히 벌에 쏘이진 않았지만 한바탕 전쟁은 치러야 했다. 해마다 이렇게 추석을 앞두고 반복되는 금화벌초(禁火伐草) 대작전이 전개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조상의 유택 돌봄이 지극정성이다. 교통이 아무리 막혀도 짜증도 안 낸다. 조상의 묘역을 찾아가는 길이 좀 막힌다고 하여 불평을 하면 불효이기 때문이다. 가히 효(孝)의 나라라 할만하다.


최근 들어 우리의 장묘문화가 급격히 바뀌어 가고 있다. 매장이 줄고 화장이 늘고 있다. 필자가 아는 한분은 유언을 통해 화장하여 바다에 뿌리라 했다. 또 한 분은 화장하여 뒷산에 산골(散骨)하라 했다. 자손들은 고인의 생전의 뜻에 따라 그리 했다. 누천년 내려오던 매장 문화가 급격히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좁은 국토로는 더 이상 매장을 소화할 수가 없다.


전국의 산하가 주택단지화하고 있다. 현재 수도권에서는 한해 30만호의 주택이 지어져야 수요를 충족할 수 있다 한다. 양택(陽宅)이 모자라 조상의 유택(幽宅)이 있는 산까지 허물어 아파트를 짓고 있는 후손들이다.


개발 지구에 포함되면 후손들은 불가피하게 조상의 묘를 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때에는 대부분이 화장을 한다. 두 번 장례를 치르는 격이다. 매장 후 다시 파헤쳐지는 묘 자리를 명당이라 할 수 없다. 명당은 없다. 명당이라면 어떠한 개발에도 밀리지 않아야 진정한 명당이라 할 만하다. 굳이 있다면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깊은 산속, 심산유곡 밖에 없을 게다.


그 옛날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제왕들도 사후에 자신의 무덤이 발굴되는 것을 꺼려했다. 무덤의 위치를 영원히 감추려고 황릉 조성작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모두 죽인 진시황제도 명당이라 하여 잡았을 자신의 무덤 발굴을 막진 못했다. 진시황릉은 알려진 바와 같이 우물을 파던 일개 농부의 삽 끝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징기스칸 또한 후세인들에게 자신이 묻힌 곳을 찾을 수 없도록 하라고 명했다. 영원히 숨기기 위해 수 만 마리의 말을 동원, 매장 후 그 위로 말을 달리게 하여 평지의 보통 땅처럼 다져놓았다 한다. 매장 후 돌아오는 길에 살아 있는 생명체는 모두 죽였다고 전해온다. 분묘 조성작업에 참여했던 인부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땅위의 짐승이나 날아다니는 새 까지도. 징기스칸 외에도 역대 원제국의 모든 황제들도 이 같은 밀장(密葬)으로 인해 지금까지도 무덤의 위치가 비밀에 쌓여 있다.


장묘문화는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유한한 국토에서 매장문화는 이제 더 이상 바람직한 장묘문화가 아니다. 납골묘라든가 수목장이 새로운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게다.


인천·경기·서울 등 수도권의 공설묘지는 이미 만장이 된지 오래다. 조사에 의하면 오는 2010년이면 화장률이 평균 70%를 넘을 것이라 한다.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 관리 측면에서라도 장묘문화는 바뀌어야 한다.


일찍이 신라 문무왕은 죽음을 앞에 두고 다음과 같은 유조(遺詔)를 남겼다. “나라를 다스리던 영주(英主)도 마침내 한 무더기 흙무덤이 되고 만다. 나무꾼과 목동들은 그 위에서 노래를 부르며, 여우와 토끼들은 그 곁에 구멍을 뚫고 사니, 한갓 재물만 허비하고 만다. 헛되이 사람들만 고되게 하고 죽은 사람의 넋을 구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하면 마음이 상하고 아픔이 그지 없으니, 이와 같은 것들은 내가 즐겨하는 바 아니다. 임종한 후 열흘이 되면 곧 고문 (庫門) 바깥뜰에서 서역의 의식에 따라 화장하라. 상복(喪服)의 등급은 정해진 법이 있거니와 장례의 제도는 절약하여 검소하게 하는데 힘쓰라.”


이처럼 일국의 제왕도 백성의 수고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왕릉을 축조하지 못하게 하고 화장을 택했다. 요즘 여전히 호화분묘를 조성하려는 일부 부유층에 경구(警句)가 되고도 남을 만한 글이다.